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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그 하나의 이름

행복한 0 3 05.15 15:30
일본의 장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끝날 때 흐르는 ‘카나타 하루카’(저편 아득히)라는 곡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있다. 몇천년 후의 인류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 따위보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얼굴로 웃는 네가 보고 싶어.
경세가적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이 가사는 어쩌면 조금 불편할지도 모른다. 대의냐 한 인간이냐라는 프레임은 많은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다루어진다.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은 기계의 침공 앞에서 한 줌 남은 인류를 구할지 자신이 사랑하는 한 사람을 구할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병사 한 명을 구하다가 해병대 분대원이 전부 전사하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무려 5억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했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식 사고에 익숙하고, 그런 정책에 의해 삶이 이리저리 휩쓸리는 데에도 익숙한 우리는 당연히 대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한 사람이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말이 멋있기는 하지만 누구도 진심으로 믿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한 사람을 살리는 낭만적인 선택 같은 것은 지위가 높고 대단한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에나 통용되는 말일 뿐, 전세사기를 당한, 탈시설했는데 정부 지원이 끊긴, 졸지에 불법체류자가 되어버린, 줄어들지 않는 공공임대주택 대기번호를 들고 있는 들판의 풀 같은, 도무지 ‘최대 다수’가 될 수 없는 이들에겐 그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고, 경제살리기에 집중하고, 기득권 개혁을 완수하고, 혹은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척결하는 등의 대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는 옳다. 이러한 대의는 도무지 부정할 방법이 없어서 어떤 대의를 편들 것인가 하는 문제를 제외하고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특히 입법이란 이 나라의 가장 평균적인 사람들을 지향하는 가장 기본적인 질서를 설계함을 목적으로 한다. 법이란, 정부란, 공직자란 한 사람의, 하나의 삶에 매몰되어 편견을 가지면 안 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대의로 충분한 것인가. 추상적인 대의는 그 안에 무심함과 잔인함을 품고 있기도 하다. 대의가 사람을 살릴 때는 그 안에 논리만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이 있을 때이다. 사람들이 대의에 집중하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서사는 한 인간의 삶의 역동을 중심으로 한다. 우리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 추상적인 가치와 법칙들의 연결망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 않는다.
지난 4월7일 안산 화랑유원지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0주기 예배에서는 304명의 희생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시간이 있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라는 효율적인 언어를 거부하고 이름을 한 명 한 명 부르는 장면은 장엄했다. 최근 사회 연구에서는 한 사람의 삶, 예를 들면 50대에 접어든 한 여성 중증장애인의 삶의 이력을 어린 시절부터 추적하고, 그로부터 사회적 맥락을 읽어냄으로써 한 인간과 그가 살아온 사회 및 역사를 함께 보고자 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구체성에 주목하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환대를
대한민국, 괜찮지 않습니다
이제 그만 격노하세요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고위 공직자의 책임 회피와 탁상공론의 근원에는 구체성의 부재가 있다. 규범의 추상성이 구체적인 한 명의 삶을 소환하는 데 실패할 경우 그 규범은 작동을 멈춘다. 입법자가 위임입법으로 떠넘긴 삶의 구체성은 관료들이 떠안게 되지만, 관료들 역시 관료제의 ‘개성 없음’이라는 규범에 짓눌려 삶의 구체성을 다루고 싶어도 다룰 수 없거나, 그것을 핑계로 삶의 구체성을 무시한다. 삶의 구체성은 뜨거운 감자처럼 아래로 전달되고 전달되어 결국 일선 경찰관, 군인, 교사, 사회복지사, 활동지원사 등 직면한 상황은 복잡하고 구체적인데 재량은 없는 젊은 시민들이 짊어지고 간다. 그 짐이 무거워 현장에서 사람이 사람을 놓아버리거나 미워하거나 곤봉으로 내려칠 때, 구체성을 다룰 필요가 없는 지위에 있는 이들은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자위한다.
어떤 정책의 대의를 인스타 좋아요 구매 판단할 때는 그 정책에 영향을 받을 이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알고 부를 수 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정책을 말로 설명할 자신이 있는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들이 희망을 품는 눈빛을 하는지, 한숨과 눈물을 내비치는지, 일선 담당자가 책무의 무게에 짓눌린 표정을 짓지는 않는지 직면해보아야 한다. 정책을 결정하는 공직자라면 대의 안에 과연 구체적인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고, 그 이름을 먼저 소환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추상성과 합리성은 그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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