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ention is all you need.’(당신이 필요한 건 집중이에요.)
이 한 줄의 문장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챗GPT 같은 놀라운 인공지능들 말이다. 대규모 언어 모델(LLM)은 뜯어보면 트랜스포머(Transformer)라는 구조로 돼 있고 그 핵심은 어텐션(Attention·집중/주의)이라는 기술이다. 비틀스의 노래 제목을 패러디한 이 문장은 이 기술을 최초로 발표한 구글의 논문 제목이다.
어텐션은 기계가 ‘무엇을 집중해서 볼 것인가’를 배우도록 설계하는 기술이다. 언어 모델이 다음으로 생성할 단어를 계산할 때 어떤 부분을 더 집중해서 참조할 것인가를 알려준다. 트랜스포머는 그중에서도 자기 자신에 대해 ‘셀프 어텐션’을 수행해 놀라운 성과를 냈다. 최근 오픈AI가 공개한 동영상 생성 모델 ‘소라’(Sora)도 트랜스포머가 주요 축이다.
인공지능이 ‘집중’이라는 개념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인류의 집중력은 반대로 역사상 가장 낮아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도둑맞은 집중력>은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끊임없이 우리의 집중력을 뺏어간다고 말한다.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거대 플랫폼 기업들의 탐욕스러운 ‘감시자본주의’를 비판하기도 한다.
그보다 나는 작가 요한 하리가 강조하는 집중력이 좁은 한 점만을 응시하는 ‘스포트라이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철학자 제임스 윌리엄스는 그것이 집중력의 첫 번째 층일 뿐이라고 말한다. 집중력의 두 번째 층은 스타라이트(별빛),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세 번째 층은 데이라이트(햇빛)다. 길을 잃더라도 장기적 목표를 알려주는 별빛 같은, 내가 서 있는 곳을 깨닫게 해 주는 햇빛 같은 집중의 형태를 의미한다. 이런 집중을 하려면 성찰과 사색을 위한 여백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특정 서버 마비를 위해 접속량을 폭주시키는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을 받은 것처럼, 우리의 뇌는 단순하고 자극적인 정보의 홍수에 질식되고 있다. 물론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자체가 해악은 아니다. 신기술에는 늘 공포가 따른다. 그러나 단순한 기술공포증이라기엔 섬뜩하다. 인공지능이 ‘셀프 어텐션’하며 인간을 뛰어넘는 사이, 사람들은 점점 집중력을 잃어간다는 사실이 말이다. 언젠가부터 인류는 이 상황 자체를 조망하는 ‘메타인지’를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과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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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초가 배경인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아버지는 쓴 글을 반복해서 요약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아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 글만 입력하면 인공지능이 요약해 준다고 환호하는 사이, 우리는 생각을 다듬고 벼리면서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머리를 맞대고 숙의하는 사회적 과정도 점점 사라진다. 특정 집단을 악마화하고 두드리면서 ‘사이다’만 들이켜는 사이 저출생, 기후위기처럼 복잡한 문제들은 그저 냉소적으로 소비된다.
요한 하리는 네 번째의 중요한 집중 형태가 ‘스타디움라이트’(경기장의 빛)이라고 말한다. 서로를 보고 서로의 소리를 듣고 집단의 목표를 세워 함께 이뤄나가는 집중력이다. 공감이야말로 사람이 가진 가장 복잡한 형태의 주목이자 가장 소중한 주의력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야말로 ‘Attention is all you need’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