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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추모비, 학전 터에 그대로 남는다

행복한 0 14 03.31 01:43
학전 소극장의 상징과도 같았던 김광석 추모비와 <지하철 1호선> 원작자(극작가 폴커 루드비히·작곡가 비르거 하이만) 흉상이 학전 폐관 이후에도 현재 자리를 지킨다.
학전은 28일 이 같은 내용을 알렸다. 1991년 3월 15일 개관해 33년간 대학로 공연문화의 정신이었던 학전은 지난 14일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마지막으로 운영을 멈췄다. 현판은 31일 철거되지만 이후에도 김광석 추모비와 학전의 대표작인 <지하철 1호선> 원작자 흉상은 남는 것이다.
‘학전 어게인 콘서트’에는 총 20회 공연에 가수 33팀, 배우 92명이 참여했으며 3128명의 관객이 전회 객석을 매진시켰다.
학전블루 소극장은 폐관하지만 학전 사업자등록은 유지된다. 학전은 향후 학전의 역사를 보존하기 위한 아카이빙 작업과 김민기 대표 및 학전 저작물을 관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학전은 크고 작은 후원을 통해 기부금이 조성됐으며, 이 돈은 콘서트 제작비에 사용되거나 김광석추모사업회에 전달됐다고 밝혔다. 학전의 채무는 지난해 11월 전해진 학전 폐관 소식 이후 많은 관객이 <지하철 1호선>과 <고추장 떡볶이>를 찾은 덕분에 해결됐다고 한다.
폐관 이후 학전 공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임차해 리모델링한 후 7~8월쯤부터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으로 운영한다.
학전은 그동안 학전을 사랑하고 학전이 존재할 수 있게 해준 수많은 아티스트와 관객,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학전을 도왔던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전했다.
어린 시절, 시인은 친구와 학교 앞 리어카에서 햄스터를 한 마리씩 사서 길렀다. 정성껏 키웠지만, 햄스터는 얼마 살지 못하고 죽었다. 슬픔과 책임감이 뒤엉켜 괴로웠다. 이후 그는 동물을 사랑할 수 있는 방법들 중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열심히 했다. 말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일기장을 펼쳐 내가 얼마나 동물을 사랑하는지 썼다. 과일을 넣은 플라스틱통을 들고 들쥐를 찾으려 개천 근처를 돌아다닌 일, 뒷동네에 사는 개 다이아가 집까지 따라왔을 때 고구마를 준 일에 대해서도 썼다.
학년이 끝날 무렵 담임 선생님은 반 학생들에게 각자의 개성을 반영한 상을 주었다. 그는 ‘동물사랑상’을 받고 싶었지만, 선생님은 그에게 ‘윤동주상’을 주었다. 어른이 되어 시인이 된 그는 나는 동물을 정말 좋아했는데 시인이 됐다고 말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마음이 그를 시인이 되게 한 걸까. 아니면 시인의 마음이 있었기에 동물을 좋아했던 걸까. 무엇이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무작정 따라가보는 것. 그 길 끝에서 원한 적 없는 선물을 받는 일은 계산 복잡한 어른들은 누릴 수 없는 어린이들만의 특권일지도 모른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조 리버먼 전 미 연방 상원의원이 낙상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27일(현지시간) 별세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향년 82세.
1942년 코네티컷주 스탬퍼드에서 태어난 리버먼 전 의원은 1970년부터 코네티컷주 주 상원의원과 연방 상원의원을 잇달아 지냈고, 민주당 소속으로 2000년 대선에서 앨 고어 대통령 후보의 러닝메이트로 뛰었다. 고어 전 부통령은 리버먼은 진정 재능 있는 지도자였다. 대선 유세 과정에서 그와 함께했던 것은 영광이었다라며 애도를 표했다.
당시 재검표 논란 끝에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후보와 딕 체니 부통령 후보가 승리하면서, 리버먼 전 의원은 부통령이 되지는 못했다. 2004년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로 출마했다가 중도 사퇴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그는 정치적으론 중도 성향 인사였고, 외교적으론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강력히 지지하는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등 매파로 분류됐다. 이에 2006년 코네티컷주 연방 상원의원 후보 경선에서 반전 메시지를 들고나온 정치 신인에게 패했다. 이후 당 지도부 반대에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리버먼 전 의원은 2008년 대선에선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 대신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AP통신은 당시 그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로 거의 낙점될 뻔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해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오바마 후보의 상원의원 시절 성과가 저조하다며 웅변이 기록을 대신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2013년 1월 임기를 마치며 상원의원에서 물러났다. 고인은 당시 상원 고별 연설에서 워싱턴 정가의 꼬인 정치를 풀기 위해 초당적 리더십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까지 중도 성향 정치단체 ‘노 레이블스’ 공동 대표로 활동하며 제3후보가 대선에 출마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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