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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재선충병’ 3차 대확산?…‘죽음의 단풍’ 든 소나무 절멸 위기

행복한 0 24 02.29 23:53
말해 뭐해. 마을 주민들이 다 안타까워하지. 우리 동네 마스코트였는데…
경북 포항 호미곶면 대동1리에서 만난 주민 김모씨(60)가 마을 앞 바위 위에서 누렇게 변해버린 해송(곰솔)을 바라보며 이같이 말했다. 척박한 땅에서 뿌리를 내린 뒤 수십 년간 해풍과 파도를 받아내며 마을을 지킨 해송 잎의 빛깔이 변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한번 걸리면 사실상 치료가 불가능한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리면서 ‘죽음의 단풍’이 든 것이다. 이 병의 고사율은 100%다.
김씨는 이미 마을의 소나무 절반 이상이 재선충병에 걸렸다며 완전히 말라 죽어 쓰러진 나무도 한둘이 아니다고 말했다.
26일 포항에서 경주까지 이어지는 해안도로 곳곳에서는 앙상한 가지와 줄기만 남은 채 죽어버린 소나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잎이 붉게 타들어 죽어가는 소나무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 마치 가을 단풍이 든 숲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경북 동해안을 따라 거대한 감염벨트가 형성됐다며 정확한 피해본수와 피해면적을 제대로 조사를 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사실상 방제가 불가능한 상황까지 왔다고 말했다.
소나무재선충병 3차 대확산이 현실이 되고 있다. 2007년과 2017년에 이어 약 7년 만이다. 전문가들은 소나무재선충병 피해가 심각했던 일본처럼 국내에서도 소나무가 절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올해 소나무재선충병 감염목은 87만그루로 추정된다. 지난해 107만그루에서 20만그루 감소한 수치다. 다만 이 수치는 올해 방제작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졌을 경우 추산되는 수치다.
산림청은 오는 4월까지 지방자치단체와 합동으로 집중방제를 벌여 대확산을 막을 계획이다. 산림청은 지난달 대구·성주·고령·안동·포항·밀양 등 6개 시·군 4만483ha를 특별방제구역으로 지정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어느 때보다 더 우려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예산과 인력 지원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방제시스템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재선충 방제는 감염병을 옮기는 매개곤충(솔수염하늘소·북방수염하늘소)이 활동하지 않는 겨울에 감염된 나무와 감염 가능성이 있는 나무를 베어내는 식으로 이뤄진다. 다만 정확한 예찰과 제거할 나무의 범위를 지정하는 설계 및 인력 투입 등에 상당한 비용이 든다. 나무 1그루당 15만원 정도로 추산된다.
정부는 재선충병 감염나무가 줄어들기 시작한 2018년부터 재선충에 감염 및 고사한 소나무 방제(제거) 예산을 줄여왔다. 2017년 596억원이었던 이 예산은 2022년 109억원까지 감소했다. 그사이 재선충에 감염된 나무는 2020년 30만8000그루에서 지난해 107만 그루로 3배 넘게 늘었다.
임재은 산림기술사는 재선충은 감염 밀도가 낮아도 산림 전체에 대한 예찰이 필요해 방제비가 많이 든다며 당시 연구용역 결과에도 방제예산을 줄이면 재선충 확산이 우려된다는 보고가 있었지만 결국 예산은 줄었다고 설명했다.
재선충병을 어느 정도 통제했다는 정부의 방심과 예산 부족에 따른 소극적인 방제 움직임이 누적돼 3차 확산을 불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재선충 피해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부 지자체가 재선충병으로 벌목되는 나무의 30% 이하만 피해고사목(재선충병으로 인해 죽은 나무)으로 집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서 대구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은 지난해 2월 산림기술사 등과 함께 재선충병 감염 피해목 10그루를 확인한 결과, 모두 피해고사목이었지만 기타고사목으로 분류돼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20여 년 경력의 산림기술사 A씨는 가령 10그루 벌목할 예산을 받고 현장을 확인해보면 15그루가 재선충에 감염돼 있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면서 인부들 입장에서는 돈을 인스타 팔로워 구매 받지 못했으니 감염목 5그루를 그대로 두고 온다. 이런 상황들이 이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심각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방제 최일선에 있는 지자체의 방제 담당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통상 지자체 소속 방제인력은 1~2명 수준이지만 이들이 담당하는 산림은 수십만㎡에 달한다.
산림기술사 B씨는 재선충 방제사업이 돈을 들여도 크게 티가 나지 않다 보니 자체 예산을 들이는 곳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치적사업에만 집중하는 단체장들의 성향도 재선충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도 원인이다. 온난화로 인해 재선충을 소나무로 옮기는 매개 곤충의 활동 기간이 늘고 개체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소나무 피해도 커진 것이다. 임재은 산림기술사는 지자체에서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지 못하면서 정부 예산도 적절히 배분되지 못하고 있다며 재선충 방제는 방제기술뿐만 아니라 예산과 지자체장의 의지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선충이 확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감염목 발생의 가장 외곽지역인 선단지를 중심으로 방제하고, 이미 감염목이 많은 중앙부위는 후순위로 방제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지자체들은 외관상 감염목이 많은 중앙부위에 방제를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방제에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해풍을 막아주는 해안림과 마을숲 등 지킬 가치가 큰 곳에 대한 방제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정규원 산림기술사는 재선충 확산 거점 선단지를 중심으로 철저히 방역해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문화재 등 반드시 지켜야 할 지역을 정하고 주변 방제를 강력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보다 앞서 소나무재선충병 피해를 본 일본은 일부 문화재 구역을 제외하곤 재선충 방제를 포기했다. 죽은 소나무가 있던 자리는 삼나무가 대체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소나무를 살릴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며 소나무가 사라지면서 발생하는 생태계 변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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