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4월이면 자주 인용되는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 이번에는 총선과 맞물려 정치 전선에 불려 나왔다. 황무지는 그 내용이 난해하거니와 분량도 적지 않다. 각종 신화와 종교, 인물과 고전, 은유와 상징이 서로 맞물리며 복잡한 구조로 엮여 다차원적 풀이가 가능하다. 특히 시의 도입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라는 구절은 다양한 배경과 상황으로 치환할 수 있는 문구다.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 모더니즘의 텍스트다.
황무지가 1차 세계대전 후 물리적·심리적 폐허에 대한 환멸과 절망을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지만, 그와 부인 모두 우울증과 신경쇠약으로 인한 불행한 결혼 생활도 시작(時作) 배경으로 거론된다. 그의 시에는 라일락, 히아신스, 라벤더, 수선화, 연꽃, 장미, 제라늄 등 다양한 꽃이 등장한다. 그중 황무지의 맨 앞에 나오는 라일락 의미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탄생이나 환생, 또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우울과 슬픔을 은유한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라일락은 그리스 신화와 관련이 있다. 숲의 신 판(Pan)은 요정 시링스(Syrinx)와 사랑에 빠졌다. 판은 자신의 구애를 피해서 숲속 나무로 변신한 시링스를 찾지 못하자, 숲속에서 속이 빈 나뭇가지를 잘라 피리를 만들었다. 그 나무가 바로 요정 시링스가 변한 것이었다. 시링가 불가리스(Syringa vulgaris)라는 라일락의 학명은 이 신화에서 비롯되었다.
라일락은 엘리엇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던 꽃이었다. 그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여인의 초상>에도 언급된다. 그에게 라일락의 의미가 비애와 상실로 바뀐 사건은 갑작스러운 친구의 전사 소식이었다. 라일락 꽃다발을 들고 파리 뤽상부르 공원을 지나던 친구 장 베르드날을 기억하고 있던 엘리엇에게 라일락은 곧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겹쳐 각인되었다. 그의 첫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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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듯 적막하던 대지에서 피어난 라일락의 새싹과 향기에서 삶과 죽음을 떠올렸을 엘리엇. 그의 시구절대로 죽음 속에서 만물이 소생하는 시절이다. 사실 대지는 죽지 않았다. 흰 눈이 덮였다고 모든 것이 사멸한 것으로 망각해선 안 된다. 다만 보이지 않았을 뿐이다. 그 속에는 수많은 염원과 욕망이 들끓는다. 물이 배를 전복시키듯, 새싹이 대지를 뒤엎는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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