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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열린 딥페이크 배우 시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행복한 0 15 02.22 00:00
닮은 배우를 찾아왔을 줄 알았는데, 딥페이크였을 줄이야.
넷플릭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살인자ㅇ난감>에는 손석구가 연기하는 주인공 장난감 역의 어린 시절 모습이 나온다. 작품 공개 후 마치 어린시절 손석구를 그대로 데려온 것처럼 빼닮은 아역이 화제를 모았는데, 알고 보니 딥페이크 기술(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활용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로 구현된 ‘진짜같은 가짜’였다. 손석구의 어린 시절 사진 여러 장을 이용해 딥페이크로 어린 손석구의 얼굴을 만든 후에 아역 배우의 연기 위에 이미지를 입혔다고 설명했다. 리얼리티를 위해서다.
최근 들어 드라마나 영화에서 딥페이크를 배우를 활용해 리얼리티를 극대화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달 종영한 JTBC 드라마 <웰컴투 삼달리> 첫 화에는 고인이 된 국민 MC 송해가 젊은 시절 모습 그대로 등장했다. 1994년에 ‘전국노래자랑-제주도 편’이 있었다는 설정을 재현하기 위해서다. KBS <고려거란전쟁>에서는 귀주대첩 등 대규모 병력 전투에서 이른바 ‘디지털 군중’을 만드는 데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디어 업계에서 딥페이크 배우를 활용하는 사례는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드라마 피디는 드라마 촬영 시에 제작비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보조출연자 인건비라며 딥페이크 기술이 좀 더 발전해서 접근성이 높아진다면 사용 안 할 이유가 없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기술이 선사하는 진귀한 볼거리들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딥페이크 기술은 쉽게 풀 수 없는 윤리적, 법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는 ‘디지털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초상권’ 문제다. 본 얼굴 소유자의 허락없이 딥페이크 배우가 다른 작품에 출연하는 일은 이미 할리우드에서는 여러 차례 이슈가 됐다. 스칼릿 조핸슨, 톰 행크스 등은 자신의 허락 없이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광고 영상을 찍었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행크스는 지난 5월 한 팟캐스트에서 AI 기술 때문에 자신이 죽고 나서도 새 영화에 계속 등장할 수 있다며 내가 내일 버스에 치여 크게 다치더라도 내 연기는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 철학과 이상욱 교수는 유명인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딥페이크 배우와 관련된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가 올려놓은 사진들이 이용돼 가상의 딥페이크 배우가 만들어지고 그가 어딘가에 출연하고 있다면, 보통 사람들이 이를 알아채고 대처하기는 유명인에 비해 훨씬 어려울 것이다. 이 교수는 SNS 사용자가 사망했을 때 기업이 그 데이터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가 아직 법적으로 깔끔하게 정리가 돼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배우들의 일자리가 딥페이크 기술로 인해 급격하게 줄 수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지난해 7월 할리우드에서 배우와 방송인 중심의 노동조합(SAG-AFTRA)이 파업에 들어간 이유는 AI(인공지능) 때문이었다. 조합은 제작자 연맹이 제시한 제안서를 보면 연기자들이 하루 촬영을 하더라도, 그 이미지를 회사가 소유하고 영원히 활용할 수 있다는 조항이 들어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면 일부 유명한 배우들을 제외하고는 딥페이크 배우들이 마치 복사 더하기 붙여넣기를 하는 것처럼 다수의 작품에 출연할 수 있게 된다. 스턴트 배우나 단역 배우들의 일자리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상욱 교수는 존재하는 기술을 무조건 쓰지 말라고 막을 수는 없지만, 기술이 어느 순간 선을 넘을 때 그것을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를 들여다보는 제도적 장치나 규제는 있어야 한다며 우리 사회도 딥페이크 기술에 대한 원칙을 논의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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