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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의 문헌 속 ‘밥상’]김득련씨 점잖기도 하지

행복한 0 9 04.21 07:29
상보 깔린 식탁에는 차림표 펼쳐 있고(鋪巾長卓食單開)/ 우유와 빵은 눈앞에 무더기로 쌓여 있다(牛奶麵包當面堆)/ 수프, 고기, 생선, 채소가 차례대로 나오고(羹肉魚蔬供次第)/ 나이프, 포크, 기타 식기는 번갈아 바뀐다(刀叉匙楪換輪回)/ 제철 아닌 진기한 과일은 유리 트레이(tray) 층층이 담겼고(不時珍果登玻架)/ 별별 빛깔의 향기로운 술이 유리잔마다 한가득(各樣香醪滿瑪杯)/ 식사 끝에 커피 한 잔 마시고(終到珈琲茶進後)/ 긴 회랑 거닐며 담배 한 대 피운다(長廊散步吸烟來).
1896년 4월1일 서울을 떠난 김득련(金得鍊, 1852~1930)은 제물포항에서 뱃길에 오른다. 5월26일 거행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파견된 사절단의 일원으로서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사절단의 단장은 특명전권공사 민영환. 영어 잘하는 윤치호도 함께였다.
김득련은 사행의 일지 작성 및 한어(漢語) 통역을 맡아 중국의 상하이-일본-북미-유럽-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그야말로 세계를 일주했다. 그는 여행의 견문과 소감을 고답적인 한시로 갈무리하곤 했다. 인용한 시, ‘끽양찬희제(喫洋餐戲題)’(서양식 저녁을 먹고 장난삼아 짓다)는 4월11일 상하이에서 나가사키로 가는 뱃길의 만찬을 노래한 것이다. 시만 놓고 보면 서양식을 제법 즐긴 것만 같다. 하지만 점잔은 시 속에서나 뺐을 뿐이다.
김득련은 1896년 5월 뉴욕에서 서울의 사촌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체면 돌보지 않고, 일상의 한순간을 있는 대로 털어놓았다.
시와는 달리 여행 떠나고 처음 며칠은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다양한 나이프와 포크를 다루는 데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득련은 나이프와 포크를 ‘오래된 야만의 잔재’로 여겼지만, 입술을 베고 혀를 찌르고 옷에 고기 등을 떨어뜨리는 낭패가 이어졌다. 커피도 쉽지는 않았다. 김득련은 설탕을 한 숟가락 가득 퍼 넣고는 맛있게 한 모금을 넘겼다. 하지만 그 가루는 소금이었다. 순간 김득련은 자신에게 쏠린 눈길과 미소를 감지했다. 여기서 밀리면 대놓고 웃음이 터진다고 판단했을까? 그는 별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버터와 꿀은 헷갈렸고, 핫케이크에다 소스, 소금, 후추, 머스터드를 양념하기도 했다. 때마침 민영환 공사가 말려 ‘양념 케이크’를 입안에 넣지는 않았지만.
과자 한 조각 속에도 세계가 있다
소담스러운 ‘약과’
너를 부른다
이 편지의 원본은 전해오지 않는다. 다행히 윤치호가 미국 북감리교 선교단이 발행한 잡지 ‘코리안 리포지토리(The Korean repository)’ 1987년 3월호에 편지를 영어로 번역해 남긴 덕분에, 막 접한 해외의 일상과 사물 앞에서 서툴기만 했던 전통 사회의 한 사내를 만날 수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있다. 서툰 가운데 점잔은 빼고 싶었던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고답적인 기록과 문장으로 생활의 한순간이 이렇게 드러난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지난 3년간 비닐하우스·컨테이너 등 가설건축물을 이주노동자의 임시숙소로 사용하겠다는 신고를 80건 이상 승인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가설건축물이 여전히 이주노동자 숙소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느슨한 규정에 더해 정부와 지자체 간 책임 떠넘기기로 이주노동자들의 주거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향신문이 18일 이자스민 녹색정의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국토교통부의 ‘임시숙소 용도 가설건축물 처리 현황’을 보면 전국의 지자체 17곳은 2021년부터 3년간 가설건축물을 ‘외국인 임시숙소 또는 인스타 한국인 팔로워 외국인 노동자 숙소’ 용도로 사용하겠다는 신고를 82건 접수해 모두 수리했다. 불허하거나 반려한 사례는 전무했다. 섹 알 마문 이주노동자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컨테이너 등 주거환경이 적절하지 않은 숙소를 제공한 사업주에 대한 신고가 이주노조로 꾸준히 들어온다고 말했다.
2020년 난방시설이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이주노동자 속헹이 사망한 채 발견된 후 이주노동자 숙소에 관한 제도적 논의가 시작됐다. 고용노동부는 2021년부터 비닐하우스 내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등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제공하는 경우 신규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사업주가 지자체로부터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을 받은 경우 가설건축물을 숙소로 사용하더라도 이주노동자 고용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문제는 간단한 요건만 갖추면 가설건축물 축조신고필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법에 따르면 필증은 대지 위치, 건축 면적, 존치 기간 등을 쓴 축조신고서와 배치도·평면도 등 서류를 지자체에 제출하면 받을 수 있다. 이한숙 이주와인권연구소 소장은 근본적으로 가설건축물은 주거용 건물이 아닌데 정부에서 편법으로 통로를 열어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람이 살기에 적합한 시설·공간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정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가설건축물은 ‘임시’숙소로 한정했지만 이주노동자를 사실상 ‘상시’ 거주시킬 수 있다는 것도 문제다. 정영섭 이주노조 활동가는 임시숙소가 얼마만큼의 기간 동안 지내는 곳인지 건축법 등에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 고용주가 숙소로 계속 활용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자스민 의원은 올해 고용허가제로 사상 최대인 16만5000명의 이주노동자가 입국할 예정이지만 주거환경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조만간 관련 내용을 담은 외국인고용법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노동부는 축조신고필증을 받을 정도면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고 해석해 허용하고 있다며 이주노동자의 주거권을 점검하기 위해 이주노동자 숙소 실사를 이달 내에 마칠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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