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성 잃은 K증시 박스권 갇혀지난 2000년 이후 미국 증시에선 시가총액 1위 기업이 수시로 바뀌고 있지만 한국에선 삼성전자 독주체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신사업 발굴 및 산업 구조 개편이 원활치 않은 탓으로 풀이됩니다. 미국에선 10년마다 혁신 기업이 배출돼 지속적인 증시 상승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코스피는 성장 방향성을 잃고 박스권만 맴돌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28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미국 시가총액 상위 10위권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마이크로소프트 가 유일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10년 단위로 살펴보면 2004∼2014년 6개가 2015∼2024년 8개가 각각 10위권 안으로 신규 편입했습니다. 특히 10년마다 창업 20년 안팎의 혁신기업이 등장해 증시 상승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메타 테슬라 등이 대표적입니다. 시가총액 1위 자리도 예외는 아닙니다. 2000년 이후 MS 제너럴일렉트릭 엑슨모빌 애플 등으로 1위 자리가 빈번히 바뀌었고 현재도 애플 MS 엔비디아 등 3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삼성전자가 1999년 이후 25년째 1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포스코 현대차 등도 시가총액 10위권에 계속 포진해 있습니다. 한국 산업에 혁신 기업 등장이 더뎌지면서 한국 증시의 역동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창양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산업 구조적으로 내수를 주로 담당하는 중소기업 경쟁력이 취약한 편이라며 중소기업 정책을 획기적으로 전환하거나 대대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국 남자 펜싱 사브르 대표팀은 어펜져스 라는 애칭으로 불립니다. 훈훈한 외모에 좋은 체격 그리고 뛰어난 실력까지 갖추고 있어서입니다. 어펜져스는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를 따내며 세계 최강임을 재확인했습니다. 오상욱이 개인전 금메달을 따냈고 4명 이 출전한 단체전에서는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도경동이 2관왕에 오른 오상욱을 향해 우리는 지금 오상욱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하자 오상욱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어펜져스 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단체전 우승이 확정된 순간 어펜져스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환하게 웃으며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다만 이들을 지도한 원우영 남자 펜싱 사브르 코치 만은 옆에서 폭풍 눈물을 쏟았습니다. 한 번 터진 울음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그는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습니다.
원 코치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눈물이 많아진 것 같다면서도 지난 3년간 힘들고 고생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했습니다.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2021년 도쿄 올림픽 때도 금메달을 땄다. 그런데 당시 금메달 멤버 중 김정환과 김준호가 빠지고 박상원과 도경동이 자리를 대신 채웠습니다. 원 코치는 멤버 두 명이 바뀌면서 주변에서 부정적인 시선이 적지 않았습니다. 선수들도 위축되면서 분위기가 많이 가라 앉았다며 티를 내지 않으려 오히려 더 강하게 맞섰습니다. 고맙게도 선수들이 너무 잘해줬다고 말했습니다. 파리 올림픽에선 조연이었지만 원 코치는 한국 남자 사브르의 전성기를 이끈 레전드 선수 출신입니다. 한국 펜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영호가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제주 중부공원 제일풍경채 하지만 이후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다가 2012년 런던 올림픽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본격적인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원 코치는 런던 올림픽에서 오은석 김정환 구본길과 함께 누구도 예상못한 깜짝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당시에도 네 선수 모두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팬들은 당시 유행했던 드라마 꽃보다 남자에 나오는 네 명의 남자 주인공을 빗대 F4 라는 별명을 붙여줬습니다. 어펜져스에 앞서 F4가 있었던 것. F4 중에서도 주인공이었던 원 코치는 사실 당시 외모 수준이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과분한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담스러웠지만 기분은 좋았다며 웃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사브르는 불모지나 다름없었습니다. 유럽세가 워낙 강해 다른 대륙 국가들은 좀처럼 파고들 여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원 코치는 예선 탈락이 기본이었습니다. 워낙 기술과 체력 차이가 많이 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캠코더로 상위권 선수들의 영상을 찍어 따라해 보는 것 정도였다고 회상했습니다. 심판 판정에서도 불이익을 받았습니다. 찰나의 순간에 따라 승부가 바뀌곤 하는 사브르 종목 특성상 심판 판정이 중요한데 유럽 선수들은 피스트 밖에서는 심판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사이였습니다.
반면 인지도가 없고 경기에도 잘 나가지 못했던 한국 선수들은 억울한 판정을 당해도 속으로 삼키기 일쑤였습니다. 당시에는 챌린지 제도도 없었습니다. 이때 SK텔레콤이 구세주로 나섰습니다.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은 SK텔레콤은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해외 훈련과 국제대회 출전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러시아 루마니아 등 대회가 열리는 곳이나 훈련 시설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습니다. 원 코치는 유럽 선수들에게도 고마운 게 선입견 없이 함께 훈련하자며 손을 내밀어줬습니다. 유럽도 나라마다 지역마다 다 특색이 있습니다. 곳곳을 다니면서 우리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아낌없이 흡수했다고 말했습니다. 본격적인 투자가 이뤄진 지 3년 만인 2006년 토리노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원 코치는 개인전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유럽 선수들이 독식하던 남자 사브르에서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시상대에 선 것입니다. 2010년 파리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전 정상에 올랐습니다. 역시 아시아 선수 최초의 쾌거였습니다. 당시 그는 파리 그랑팔레 금메달을 땄는데 올해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사브르 대표팀은 역사적인 그랑팔레에서 금메달 2개를 합작했습니다. 그는 아마추어 종목에서 투자와 성과는 비례합니다. SK텔레콤의 지원이 없었으면 F4도 어펜져스도 한국 펜싱의 전성기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원 코치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로 펜싱 그랜드슬램 을 달성한 후 2015년 은퇴했습니다. 이후 소속팀 서울교통공사에서 코치를 맡으며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는 TV 해설위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2021년 다시 코치가 돼 대표팀으로 복귀했습니다. 정년이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을 뿌리치고 다시 선수촌으로 돌아온 그는 대표팀 코치는 성적이 안 나면 바로 잘리는 자리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잘해 낼 자신이 있었다며 내가 선수 때 쌓은 기술과 철학을 후배들에게 직접 전달해주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코치 원우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칼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펜싱 칼을 잡고 저녁에는 요리용 주방 칼을 들었습니다. 월드컵과 그랑프리 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에 나갈 때 선수들은 한국 음식을 찾기 마련입니다. 대부분의 펜싱 경기는 유럽에서 열리기 때문에 경기를 마친 뒤 한식을 구하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 코치가 직접 요리사로 나선 것입니다. 원 코치는 외국에 나가면 선수들이 가장 먹고 싶어 하는 게 김치다. 그래서 김치를 잔뜩 싸 들고 가서 김치찌개를 만들어주곤 한다며 고추장과 조미료 등을 고루 챙겨가 닭도리탕도 종종 끓인다. 유럽 현지에서도 닭은 구하기가 쉬워 얼큰한 닭도리탕으로 한식의 그리움을 채우곤 한다고 말했습니다. 2021년 대표팀 코치 취임 후 올해 파리 올림픽까지 3년 동안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요즘 모처럼 코치가 아닌 아빠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 첫째와 세 살 난 둘째 아이를 돌보는 게 하루 일과다. 아이들 학원과 어린이집 라이딩부터 청소 설거지까지 모두 담당합니다. 모처럼 가족 여행도 다녀왔습니다. 대표팀에서 요리사로 활약했던 그는 아이들에게도 종종 식사를 만들어준다. 원 코치는 흔히 펜싱 경기를 원 포인트 싸움이라고 합니다. 한 치 앞을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치열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모처럼 육아를 해보니 육아 역시 펜싱 못지않은 원 포인트 싸움이라는 걸 매일 절감하고 있다며 웃었습니다. 하지만 얼마 있으면 그는 다시 펜싱의 원 포인트 싸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11월 재소집되는 국가대표 선수단 일정에 맞춰 다시 선수들을 지도하게 됩니다. 은퇴한지 10년 가까이 됐지만 그는 따로 건강을 관리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운동량이 많다. 그는 선수들을 1대 1일 레슨 형식으로 지도하는데 하루에 4~6명과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합니다. 선수당 1시간 가량 훈련을 한다고 가정하면 4~6시간 동안 쉼 없이 칼을 주고 받는 셈입니다. 그는 세계적인 선수들이니만큼 움직임과 스피드가 너무 좋다.
하루 지도를 하고 나면 온몸에 힘이 다 빠질 지경이라고 말했습니다. 대신 그는 선수 발목 강화에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종목 특성상 펜싱 선수들이 발목을 접질리기 십상인데 그 역시 선수 생활 내내 발목 부상으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작은 돌덩이를 밟으면 발목이 휙휙 돌아가곤 합니다. 그는 발목 인대 주변 강화에 가장 좋은 건 수영입니다. 특히 수영을 할 때 발차기를 많이 하면 도움이 많이 된다며 평소 쉴 때도 가동 범위가 나오는 데까지 발목을 꺾어주는 동작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로 올림픽 금메달을 땄고 지도자로 제자들의 올림픽 금메달을 도운 그의 목표는 한국 남자 사브르가 세계 최강의 자리를 유지하는 게 힘을 보태는 것입니다. 그는 2028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피과 2032년 브리즈번 올림픽까지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다. 그때가 되면 나도 50살 언저리가 됩니다. 앞으로 두 번의 올림픽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후 다음 인생 목표를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한국 남자 사브르 대표팀의 최고의 장점은 팀워크라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단체전에서는 팀원들 간의 신뢰가 핵심입니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 능력 이상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파리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도 그렇게 나왔다고 했습니다. 사브르 대표팀의 팀워크의 단적인 예는 결혼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승무원 출신인 김규리 씨와 2015년 결혼했습니다. 펜싱 선수-승무원 1호 커플이었습니다. 이후 김준호 구본길 김정환이 차례대로 결혼했는데 신부들은 모두 승무원 출신이었습니다. 원 코치는 서로 소개를 해주거나 한 건 아닌데 우연히 그렇게 됐습니다. 모두 이상형을 보는 눈이 비슷한 것 같다며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