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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의 상처’ 고대 이집트 유적… 국제사회 여론은 “반환하라”

행복한 0 13 02.23 12:34
문화유산의 도굴과 약탈, 훼손의 역사는 길다. 전쟁·다툼으로 점철된 인류사와 맞먹는다. 유적과 유물은 승리의 전리품이자 상대에게 정신적·문화적 열패감을 안기는 효과적인 도구였다. 대대로 내려오는 문화유산이야말로 한 민족·나라의 정체성이자 자긍심, 사회 통합의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도굴과 약탈은 고대부터 일어났지만 극성을 부린 것은 19~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다. 서구 강국과 일본 등 제국주의자들은 이집트 등 세계 주요 유적지들을 훑었다. 왕·귀족들의 무덤을 파헤쳐 껴묻거리(부장품)를 꺼냈고, 전적은 물론 걸작의 미술·공예품 등 유물을 챙겼다. 심지어 무덤과 신전·석굴의 채색 벽화·부조 벽체, 오벨리스크를 통째로 뜯어갔다.
‘유물 사냥꾼’들이 활개친 ‘약탈의 시대’다. 제국주의·식민주의자들에게 정복지의 문화유산은 정치적 힘을 과시하고, 문화적 우월성을 내세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오리엔탈리즘에 기반한 역사·문화의 왜곡도 서슴지 않았고, 보존·연구를 핑계 삼은 유물 수집과 소장품은 권력과 부의 위세품이기도 했다. 문화유산 약탈은 20세기 중반 인류 차원의 보존을 강조하는 문화유산 개념이 형성될 때까지 계속됐다.
‘약탈의 시대’에 ‘유물 사냥꾼’들이 챙긴 그 유물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대다수는 영국박물관, 루브르박물관,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독일 노이에스(신) 박물관 등 세계적 유명 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으로 전시 중이다.
제국주의시대 문화유산 약탈의 최대 피해국은 이집트다. 국제적으로 이름난 박물관·미술관·개인 컬렉션에는 저마다의 자존심이라도 되듯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 있다. 유출된 유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미라를 비롯해 파피루스 문서, 채색 벽화와 부조, 조각품 등 그 종류·수량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신전들 앞에 우뚝 서 있던 오벨리스크들은 뽑아져 로마·파리·런던·뉴욕·이스탄불 등에 있다.
햇빛에 피라미드를 빛나게 하던 피라미드 외장석과 피라미드 꼭대기의 피라미디온, 스핑크스의 수염, 신전의 기둥들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 물론 선물이나 기증·구입 등 합법적으로 유출된 것들도 있지만 대다수는 유출 경위가 명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다. ‘약탈의 시대’에 몰래 빼돌려진 것들이다.
‘한국이집트학연구소 곽민수 소장과 함께 하는 2024 이집트 문명 탐사’(이티원(ET1) 주관·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 후원) 2차 여행은 시대적·공간적으로 고대 이집트 유적·유물의 상당수를 살폈다. 공간적으로 나일강 하류~상류, 즉 카이로~아부심벨까지 답사했다. 시대적으로는 5000여년, 특히 초기왕조~로마시대까지 3000여년 간의 문화유산에 집중했다. 찬란한 유적·유물을 통해 이집트 문명의 실체를 일부나마 체감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경험에 몸을 떤 시간이다.
한편으론 약탈의 아물지 않은 상처를 곳곳에서 생생하게 접하고, 아프게 확인한 시간이기도 하다. 답사단이 찾은 카이로 도심의 ‘이집트박물관’(Egyptian Museum)도 그 중 하나다. 기원전 3000년경 초기왕조시대~4세기 말 로마시대에 이르는 유물을 소장·전시·연구하는 유서 깊은 박물관이다. 그런데 박물관에 들어서면 생뚱맞은 장면을 마주한다. 투탕카멘의 황금 유물 등 인류사적 보물이 즐비한 박물관인데 오른쪽 벽에 유물도 아닌 유물 사진이 전시돼 있어서다.
사진 속 유물은 프톨레마이오스 시대(기원전 332~30년경)의 비석 ‘로제타 스톤’이다.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신성문자) 해독을 가능케 함으로써 이집트 문명연구의 변곡점을 만든 유물이다. 프톨레마이오스 5세를 찬양하는 내용이 상형문자, 민중문자(데모틱·상형문자를 간략화한 ‘신관문자’를 더 간소화한 문자), 그리스 문자 등 3개 문자로 새겨져 있어 상형문자 해독의 단초가 됐다.
‘로제타 스톤’은 1799년 로제타(라시드)에서 이집트 원정에 나선 나폴레옹의 프랑스군이 발견했지만 영국 차지가 됐고, 지금 영국박물관에 있다. 이집트 정부는 수십년째 반환을 촉구하지만 영국은 거부하고 있다. 이집트박물관 직원은 ‘로제타 스톤’ 반환을 촉구하며 그 사진을 전시 중이라면서 10년 전에는 복제품을 전시했었다고 전했다.
룩소르의 북쪽 고대 도시 덴데라의 하토르신전에서도 당혹감을 느껴야 했다. 신전 2층의 방에 들어서면 시커멓고 거친 부조 유물이 천장에 있다. ‘데라 신전 12궁도’ ‘덴데라 황도대(Zodiac)’ ‘덴데라 천궁도(12궁도)’로 불리는 유명 유물의 모조품이다. 19세기 초 프랑스인들이 신전의 벽을 허물고 통째로 떼내가 루브르박물관에 있다.
‘덴데라 12궁도’는 태양이 지나가는 하늘의 길(황도)을 12등분해 각각에 12개 별자리를 부여한 2000여년 전의 천문도다. 이집트는 물론 인류사적으로 소중한 천문과학 유물이다.
곽민수 소장은 이집트가 많은 유물을 약탈 당했지만 그 중에서 3대 약탈 문화유산으로 불리는 유물이 있다며 루브르박물관의 ‘덴데라 12궁도’와 영국박물관의 ‘로제타 스톤’, 그리고 독일 베를린 노이에스(신) 박물관의 ‘네페르티티 흉상’이라고 밝혔다.
‘네페르티티 흉상’은 3300여년 전의 아름다운 조각품이다. 신왕국시대(기원전 1500~1069년경) 파라오이자 투탕카멘의 아버지인 아케나톤(아멘호테프 4세)의 왕비 네페르티티를 형상화했다. 화려한 색감의 채색, 수준 높은 조형미에 현대적 미감까지 엿보여 인류사적 명품이란 평가다. 왼쪽 눈이 그려지지 않은 이유가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흉상은 고대 이집트 미술사에서 독특하고 이단적 사조인 ‘아마르나 미술(예술)’ 대표작이어서 더 귀중하다. ‘아마르나 미술’은 기존 다신교 전통을 거부하고 유일신 아텐 신앙을 도입해 ‘이집트 역사의 이단아’ ‘종교 개혁가’로 불리는 아케나톤 시대의 예술을 말한다. 기원전 1300년 초중반 수도 아마르나를 중심으로 성행했다. 정형화된 기존과 달리 사실적·입체적·감성적이며, 인간적 감정을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특징이다.
이집트박물관은 아케나톤과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 키야가 입맞춤하는 ‘아케나톤과 키야 조각상’을 아마르나시대 걸작으로 전시 중이다. 아케나톤 사후 아들 투탕카멘과 후대 파라오들이 그의 흔적을 철저하게 지우고 전통으로 회귀하면서 아마르나 미술은 사라졌다. 하지만 ‘네페르티티 흉상’ 등에서 보듯 고대 이집트 예술 다양성에 큰 몫을 했다.
독특한 아마르나 예술을 상징하는 ‘네페르티티 흉상’은 1912년 독일 고고학팀이 아마르나에서 발굴, 몰래 반출했다. 지금은 ‘베를린의 모나리자’로 불리며 신박물관으로 전 세계 관람객을 불러 모은다. 이집트박물관·이집트문명박물관에서는 ‘네페르티티 흉상’ 문화상품(굿즈)을 판매할 뿐이다.
답사 여정에서 눈에 밟힌 문화유산 약탈의 상처들은 숱하다. 룩소르의 ‘룩소르 신전’에 있는 오벨리스크도 그 중 하나다. 오벨리스크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고대 이집트 태양 신앙의 상징물이다. 보통 쌍으로 만들어 태양신에게 봉헌돼 신전의 입구에 나란히 세워졌다. 독특한 형태, 새겨진 상형문자 등으로 고대 이집트 문화유산의 백미로 손꼽힌다.
그러나 룩소르신전의 탑문 앞에는 한쌍의 오벨리스크가 아니라 1기만 외롭게 서있다. 다른 1기는 파리 콩코르드 광장에 있다. 신왕국시대 유명 파라오인 람세스 2세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오벨리스크는 19세기 초 오스만제국의 이집트 총독이 프랑스에 선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보다 해외에 더 많은 ‘비운의 유물’이다. 로마 황제들은 갖가지 이유로 로마로 빼돌렸다.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을 비롯해 판테온, 포폴로·몬테치토리오 광장 등에 서있는 오벨리스크들이다. 산 조반니 광장의 오벨리스크는 룩소르에 있는 이집트 최대 규모의 ‘카르나크 신전’에서 뽑아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벨리스크의 수난은 로마시대에 그치지 않고, 제국주의시대에도 계속됐다.
‘유물 사냥꾼’들의 탐욕은 지하 무덤에들도 깊은 상흔을 남겼다. 투탕카멘 등 파라오의 무덤들이 모인 ‘왕들의 계곡’에 있는 세티1세(재위 기원전 1294~1279년경) 무덤이 대표적이다. 람세스2세의 아버지이자 이집트 최고 융성기의 기반을 다진 파라오다.
바위산의 지하를 파 대규모로 조성한 무덤은 19세기초 발견되면서 ‘아름다운 무덤’으로 소문이 났다. 유럽 각국의 ‘유물 사냥꾼’이 모여들었고 껴묻거리는 물론 벽화·부조들 마저 뜯겨나갔다. 기둥 하나가 통째로 훼손되기도 했다. 인스타 좋아요 구매 당시 사라진 유물, 벽화 등은 물론 세계 유명 박물관·미술관에 흩어져 있다.
‘왕들의 계곡’ 인근의 ‘귀족 무덤군’도 마찬가지다. 신왕국시대의 귀족인 세네페르의 무덤은 규모는 작지만 세련된 포도송이 천장 벽화로 답사객의 탄성을 부른다.
다듬지 않은 바위 천장의 굴곡을 활용한 벽화는 3000여년 전 채색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생동감이 넘친다. 하지만 벽은 곳곳이 흉물스럽게 비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세네페르의 목걸이’ 등 무덤 껴묻거리는 루브르박물관 등에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이집트는 해외로 유출된 유물을 소장한 국가, 박물관·미술관에게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스핑크스의 턱수염’(영국박물관), 쿠푸피라미드 설계자로 알려진 ‘헤미우누 상’(독일 뢰머·펠라자우스 박물관), 고왕국시대 유물인 ‘안카프 흉상’(미국 보스턴미술관), ‘하트셉수트 좌상’(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 숱하게 많다. 국가유물최고위원회(SCA)를 중심으로 공개적 반환 촉구와 비공식 물밑 외교를 병행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주역인 소장국과 박물관·미술관들은 여전히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거부가 이어지자 동병상련의 피해국들은 국제적 협력도 모색하고 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떼내간 대리석 조각인 ‘파르테논 마블스’(영국은 ‘엘긴 마블스’, 영국박물관 소장)의 환수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리스 등이다. 지난 2010년에는 이집트를 비롯해 피해국 22개국이 카이로에 모여 불법 유출된 문화유산의 원소유국 권리를 강조하며 반환을 요구한 ‘카이로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빼앗긴 자’들이 ‘빼앗은 자’들을 상대로 연대해 대응하자는 것이다. 피해국들의 강력한 환수 노력으로 일부 유물은 돌아왔다. 하지만 피해국들이 반환을 요구하는 유물들이 아니다. 1970년대 이후 불법 유출돼 장물로 확인된 소수의 유물들을 되돌려 주는 것이다.
국제 무대에는 여전히 돌려달라는 절규와 못준다는 목소리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소장국들은 증거 제시도 없이 ‘합법적 수집’이라며 불법 유출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제국주의시대 등 격동기에 뻬돌려진 유물의 유출 경위를 현실적으로 알기 힘든 점을 악용하는 것이다.
심지어 보존·관리 환경의 우수함, 더 나은 전시로 더 많은 세계 시민들이 볼 수 있다는 점도 반환 거부의 근거로 내세운다. 이집트에 있는 것보다 영국·프랑스 박물관에 있는 게 낫다는 강변이다. ‘약탈 유물들을 전시하는 영국박물관이 진정 영국의 박물관이냐, 루브르박물관이 진짜 프랑스 박물관인가’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소장국들이 도덕적 비난에도 반환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특정 유물을 반환할 경우 떳떳하게 수집하지 않은 많은 소장품의 소장 근거가 줄줄이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을 두려워한다. 또 유물의 전시·활용을 통한 엄청난 수입 등 내놓기 아까운 관광자원이 바로 고대 이집트 유물들이다.
실효성 높은 관련 국제법이 없는 것도 소장국들의 반환 거부를 부추긴다. 불법 유출된 문화유산의 환수 문제가 유엔 총회에서 제기된 것이 이미 1960년대다. 이후 유네스코를 중심으로 여러 협약들이 체결됐다. ‘전시 문화유산 보호에 관한 헤이그 협약’(1954년), ‘문화유산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권고’(1964), 국제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문화유산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1970), ‘도난 또는 불법 반출된 문화재 반환에 관한 유니드로 협약’(1995)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들 협약은 구속력, 강제력이 없다. 일부 소장국은 아예 협약에 가입 하지 않는다. 협약들 가운데 ‘문화유산의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 금지와 예방 수단에 관한 협약’이 그나마 주목받지만 ‘약탈의 시대’에 약탈된 유물에는 효력이 미치지 못한다. 유네스코 산하에는 불법 유출된 문화유산의 반환 논의와 협상틀을 제공하기 위한 ‘문화유산 반환촉진 정부간위원회’(ICPRCP)도 있지만 실효성은 적다. 이런 국제 상황은 소장국의 입지를 오히려 강화시킨다. 약탈 피해국들이 왜 연대를 해야 하고 그 연대가 왜 중요한지 잘 보여준다.
한국도 수수방관할 만큼 ‘남의 일’이 아니다. 지난 1월 현재 해외에 유출된 한국 문화유산은 29개국에 24만6300여 점이다(문화재청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집계). 국가별로 보면, 도쿄국립박물관 등 일본 기관·개인 소장이 10만9800여점으로 가장 많고, 미국·독일·중국·영국·프랑스 순이다.
선물이나 기증·합법적 거래로 유출된 것도 있지만 역사적 혼란기에 불법 반출된 유물도 많다. 불법 유출된 유물의 환수 노력은 얼마나 적극적으로 하는지, 현실적으로 환수가 어렵다면 현지에서의 활용 등은 어떻게 효율적으로 하는지 짚이봐야 한다.
고대 이집트 문명 탐사는 아직도 생생한 약탈의 상처들을 통해 문화유산 환수·반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되새기게 한다. 도덕적 가치가 무참히 훼손되는 냉엄한 국제 현실 속에 약탈 유물은 반환하라는 세계 시민사회의 커지는 목소리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가치 있게 다가온다.
피해국 유물로 치장한 소장국들의 양심 회복, 제국주의시대의 야만적 문화폭력을 성찰하고, 유명 박물관·미술관 전시실의 이집트 유물을 다시 보자는 뜻이기 때문이다. 약탈 유물은 더이상 박물관·미술관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부끄러움, 수치가 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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