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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에게 ‘안전한 세상’ 약속…10년째 ‘인재’ 도돌이표[세월호 10년, 함께 건너다]

행복한 0 10 04.04 11:07
10년 전 봄, 아직 차가운 바다에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던 세월호에는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들도 타고 있었다. 이 중 250명이 돌아오지 못했다. 동창들과 여행을 떠난 사람들, 제주로 이사를 하던 가족도 있었다. 수사 등을 통해 세월호 참사는 ‘인재’라는 게 명확하게 드러났다. 선장과 선원들은 승객을 지켜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고, 선사는 화물을 과적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안전 조치는 소홀히 했다. 이런 문제를 관리·감독해야 할 기관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정부와 사회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경향신문이 정부의 ‘재난연감’을 토대로 세월호 이후인 2015년부터 2022년까지 발생한 사고를 살펴봤더니 참사는 계속 반복되고 있었다.
이 기간 40건의 다중밀집시설 대형화재가 발생해 143명이 숨지고 598명이 다쳤다. 16건의 선박사고로 120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33명이 다쳤다. 일터도 안전하지 않았다. 사업장에서 발생한 8건의 ‘대규모 인적사고’로 74명이 목숨을 잃었고 93명이 부상을 입었다. ‘다중밀집건축물 붕괴 대형사고’는 3건이 발생해 9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분류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14명이 목숨을 잃은 충북 오송 지하차도 참사, 159명이 숨진 서울 이태원 참사도 있었다. 사고가 참사가 된 배경에는 ‘안전불감증’이 있었다.
2015년 선박 전복으로 인한 대규모 인명피해가 났다. 9월5일 밤 제주 추자도에서 전남 해남으로 향하던 낚시어선 돌고래호가 전복돼 승선 인원 21명 중 18명이 숨지거나 실종됐다. 구명조끼를 착용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2017년 12월3일에는 인천 영흥면 해상에서 급유선과 낚시어선이 충돌해 15명이 사망했다. 급유선 당직자가 동영상을 보느라 낚시어선을 뒤늦게 발견한 게 원인이었다. 같은 해 12월21일에는 충북 제천시의 목욕탕 건물에서 불이 나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쳤다. 사망자 29명 중 20명이 2층 여성목욕탕에서 나왔는데 비상구에 물건이 쌓여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2018년 1월26일에는 밀양 세종병원에서 불이 나 47명이 숨졌다. 연기가 위로 퍼지는 것을 막는 병원 방화문은 열려 있었다. 2020년 4월29일 경기 이천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했다. 용접 불꽃이 가연성 물질에 옮겨붙었는데 대피유도등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2021년 6월9일 광주광역시에서는 해체 중이던 5층 건물이 도로 쪽으로 무너지면서 시내버스를 덮쳤다.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원청에서 하청·재하청·재재하청으로 이어지는 업계 고질적인 비리가 드러났다.
2022년에는 참사로 200명 가까운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1월11일 광주에서 또 한번 건물이 붕괴했다. 신축 중이던 39층 아파트가 무너져 노동자 6명이 숨졌다. 공사는 설계도와 다르게 변경됐고 콘크리트 강도도 기준 미달이었다.
9월6일 경북 포항에서는 차를 빼기 위해 인스타 좋아요 늘리기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던 주민 8명이 범람한 하천물에 숨졌다. 당시 포항에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상류 저수지 2곳이 방류를 시작했는데도 저수지 관리인은 유관기관에 통보하지 않았다.
10월29일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대형참사가 났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핼러윈 축제’를 즐기기 위해 이태원으로 사람들이 몰렸지만 경찰과 행정당국은 ‘주최자가 없다’며 방치했다. 이태원 골목에서 159명이 사망하고 334명이 다쳤다. 사고 발생 수시간 전부터 112·119 등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가 이어졌다.
12월29일에는 제2경인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들이 방음터널에 불이 났지만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 사고로 5명이 숨지고 47명이 다쳤다. 방음벽 소재가 불에 잘 타는 아크릴이었기 때문이다.
2023년 7월에는 충북 오송 지하차도가 인근 하천이 범람하면서 물에 잠겼다. 이 사고로 지하차도로 진입했던 14명이 숨졌다. 인근 하천에서 공사를 하던 행정당국이 제방을 제대로 복구하지 않으면서 벌어진 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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