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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북, 내각전원회의…“1분기 경제계획 빛나게 완수돼”

행복한 0 5 04.07 03:43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북한이 내각전원회의 확대 회의를 열고 올해 1분기 경제계획 추진 상황을 점검했다.
북한 공식 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덕훈 내각 총리가 지도한 내각전원회의 확대 회의가 지난 3일 화상으로 진행됐다고 4일 보도했다.
보고를 맡은 양승호 내각 부총리는 회의에서 새년도 12개 중요 고지 점령을 위한 첫 분기 인민 경제계획이 빛나게 완수됐다고 했다. 12개 중요 고지는 2022년 말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목표가 설정된 알곡, 전력, 석탄 등 12개 항목을 뜻한다.
회의에서는 지방발전 20X10 정책을 실행할 대책도 논의됐다. 지방발전 20X10 정책은 매년 20개 군에 식음료·생필품과 같은 공장을 지어 10년 안에 지방의 생활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통신은 이번 회의가 경제 부문 지도 일군들의 사상 관점과 사업 기풍, 일본새(일하는 태도)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올 데 대해 강조했다고 했다.
2030유권자네트워크 소속 대학생 활동가들이 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대학생이 평가한다! 윤석열 정부 중간고사 점수 발표 기자회견’을 열고 투표 독려 손팻말을 들고 있다. 평가는 청년 일자리·노동·과학기술·주거(전세사기)·성평등·국정운영 전반 등 6개 문항에 대해 A~F(4~0점)학점을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2030 유권자네트워크 측은 평가 결과 여섯 항목 모두 평균 D학점(1~2점)을 기록했다며 학생으로 치면 학사경고감이라고 밝혔다.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쓰루미 슌스케 지음 | 김성민 옮김글항아리 | 304쪽 | 1만7000원
일본의 사상가 쓰루미 슌스케는 1922년 도쿄의 정치인 가문에서 태어났다. 15세에 미국으로 가 16세 때부터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을 침공하자 미국 정부 관료는 쓰루미에게 일본으로 돌아가는 교환선에 타겠느냐고 물었다. 쓰루미는 타겠다고 대답했다. 1942년 귀국한 쓰루미는 바타비아(현재 자카르타)의 해군 무관부에서 간부들이 읽는 신문을 만들었다.
<전쟁의 소문 속에 살았다>에는 쓰루미가 80세부터 7년 동안 청년 시절을 회고하며 쓴 에세이가 담겼다. 쓰루미의 일본 귀국 결정은 삶에 있어서도, 사상에 있어서도 짙은 영향을 남겼다. 쓰루미는 나는 그 전쟁에서 일본이 미국에 질 것을 알고 있었다며 다만 질 때는 지는 쪽에 서야 할 것 같았다고 주장한다. 가족, 친구, 그것이 내게는 국가와 구별되는 ‘나라’이며, (중략) 이 국가는 올바르지도 않을뿐더러 반드시 패배한다, 이 국가의 패배는 ‘나라’를 짓밟을 것이다, 그때 나의 ‘나라’와 함께 패배하는 쪽에 서 있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다.
쓰루미는 미국에서 유학해 미국 자유주의에 큰 영향을 받았다. 쓰루미는 법률적인 ‘국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떻게 그 국가의 생각을 나의 생각으로 받아들일 수 있으며, 국가 권력이 말하는 대로 타인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라고 썼다. 하지만 쓰루미는 직접 총을 쏘지는 않았더라도 일본 군속(군무원)으로나마 전쟁에 기여했다. ‘나라’와 함께한다며 ‘국가’의 죄를 저지른 모순에 대한 변명은 다소 궁색해 보인다.
쓰루미는 패전 이후 평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소리 없는 소리의 모임’에서 안보조약 개정 반대운동에 앞장섰고, 미국의 베트남전쟁에 반대하며 ‘베트남의 평화를! 시민연합(베헤련)’을 조직했다. 전쟁 포기를 약속한 일본 헌법 9조를 지키려는 ‘9조 모임’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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