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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 손끝에서 살아난 ‘베토벤 소나타 17번’ 각양각색 선율

행복한 0 5 04.07 08:18
손열음·조성진 등 배출…올해는 성악·플루트 등 7개 부문 경연지난달 28일 중학부 피아노 예선…음악으로 위로 주고 싶어
여느 때라면 친구들과 시끌벅적 웃으며 떠들 법한 아이들이 모였는데, 이날만큼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듯 고요하다. 하나같이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감을 넘어 엄숙함까지 감돈다. 조별로 정해진 시간에 모인 아이들은 연주 순서를 추첨한 뒤 차례로 연습실에 들어간다. 간략히 손을 풀 수 있는 몇분간의 연습 시간이 주어진다.
연습을 마치면 무대 뒤편 대기 장소로 향한다. 앞 순서 참가자의 연주를 들으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잠시도 가만 있지 못한 채 허공의 보이지 않는 건반을 누르며 연습하기도 하고, 손이 굳을세라 핫팩을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마침내 순서가 되면 심사위원과 참관객이 지켜보는 무대로 오른다. 지난 몇 달간 이날을 위해 수천 번 연습한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7번 1악장을 연주할 시간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이화여고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73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 피아노 중학부 예선 현장이다. 이날 100여명의 참가자들이 모여 본선 진출을 위해 실력을 겨뤘다.
한창 배우는 학생이지만 동작과 표정은 그럴싸했다. 같은 곡이 매번 반복되는데도 저마다 다른 연주처럼 들렸다. 아직 어린이 티를 벗지 못한 참가자도, 성인처럼 큰 키의 참가자도 동등한 조건에서 갈고닦은 연주를 뽐냈다.
예원학교 3학년 최빈아양(15)은 작곡가(베토벤)를 위해 연주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최양은 베토벤이 청각을 잃은 것을 숨기기 위해 스트레스 받아가며 쓴 곡이다. 당시 자살 시도도 했다고 한다. 베토벤의 무너지는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슬럼프가 왔을 때 손열음의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1번을 들으며 다시 건반 앞에 설 용기를 얻었다는 최양은 음악으로 위로를 주는 행복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선화예중 3학년 손영우군(15)은 조금 흥분해서 급하게 친 것 같지만, 음악적으로 괜찮았다고 자신의 연주를 자평했다. 콩쿠르 참가를 권한 사람은 없었지만 스스로를 테스트하고 싶어 지원하게 됐다는 손군은 지난 3개월간 하루 4~5시간씩 맹연습했다.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 김선욱을 좋아한다는 손군은 매일 연습해도 매번 새로운 걸 발견할 수 있어서 피아노가 좋다. 클래식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다는 걸 알려주는 연주자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예원학교 3학년 홍해원양(15)은 연주를 잘 못했다면서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다니엘 바렌보임의 베토벤 소나타를 들으며 연습하는 과정을 떠올리면서 겨우 표정이 풀렸다. 홍양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고, 공감할 수 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화경향음악콩쿠르는 전쟁 중이던 1952년 ‘어린 음악가 발굴’을 내세우며 처음 열렸다. 70여년의 역사를 거치며 1회 피아노 부문 인스타그램 팔로워 구매 수상자인 신수정을 비롯해 정경화, 김대진, 김선욱, 손열음, 선우예권, 김봄소리, 조성진, 양인모, 박재홍 등 숱한 연주자를 배출했다. 올해는 바이올린, 비올라, 피아노,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성악 등 7개 부문에 1000명 가까이 참여했다.
심사위원 윤철희 국민대 교수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음악을 느끼며 연주하는 수준 높은 참가자가 많았다며 콩쿠르 준비 과정에서는 명연주자 흉내만 내지 말고 곡의 템포, 구성, 밸런스를 이해하면서 기본기를 다져 음악에 맞는 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8년 제27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에 참가한 백혜선 뉴잉글랜드 음악대학원 교수는 음악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훌쩍 넘어도 이화경향음악콩쿠르의 지정곡은 잊히지 않는다며 콩쿠르와 시험 때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해서 쌓아 올린 실력은 어떤 힘든 방해물이 있어도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국 꼭 빛을 발한다는 것을 믿고 꾸준히 노력하라고 격려했다.
제73회 이화경향음악콩쿠르 본선은 11~18일 부문별로 열려 미래의 명연주자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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