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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경의 한뼘 양생]다시, 공부란 무엇인가

행복한 0 2 04.25 21:56
새삼 공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 내가 속한 작은 인문학공동체와 나의 공부에 대한 질문이다. 신도시 주택가에서 16년 전 처음 마을인문학 공동체를 열었을 때, 세상에서는 우리를 ‘공주(공부하는 주부)’로 불렀다. 당황했지만 현실이었다. 이후 ‘공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민은 다른 공부가 다른 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으로 이어졌고, 다시 모스, 마르크스, 폴라니 등의 공부로 연결되고, 또다시 마을작업장, 마을화폐의 실험으로 나아갔다. 이후 청년들이 오면 청년들과 중장년 세대의 연대라는 화두를 붙잡고, 또 밀양과 엮이면 에너지 정의와 탈성장의 삶이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공부가 진행되었다.
마투라나와 바렐라는 진화란 자연선택이 아니라 자연표류라고 한다. 마치 산꼭대기에서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리면 똑바로 흘러가다가 돌이나 나무에 걸려 진로를 바꾸기도 하고 비바람의 영향도 받으면서 불규칙하게 흐르듯이, 진화도 그렇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우리 공부 역시 정해진 목표도 고정된 중심도 없이 각자의 의지, 구체적 정세, 몇 가지 우연, 제한된 역량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자연표류하듯 그렇게 나아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스타플레이어 한 명 없이도 웬만해선 막을 수 없는 동네축구팀처럼 단단해져 있었다. 우리는 그것을 공부와 밥과 우정의 공동체라고 불렀다.
코로나19 이후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유튜브, 비대면 플랫폼, 챗지피티의 시대가 열렸다. 바야흐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공부에 접속할 수 있는 대중지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우리만 하더라도 비대면 세미나에는 부산, 대전, 영주, 전주 등 전국 각지에서, 심지어 미국이나 홍콩, 호주에서도 접속한다. 구성원도 직장인, 백수, 남성, 퀴어, 비혼 등으로 다양해졌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이런 플랫폼을 통한 공부가 광의의 구독경제에 포섭되면서 인문학 공부조차 서비스 상품처럼 소비되는 것은 아닌가, 라는 불안과 우려도 생긴다. 혹시 우리는 지금 인문학 상품을 욕심껏 ‘구독’하거나, 혹은 이 플랫폼에서 저 플랫폼으로 좀 더 매력적인 공부 상품을 찾아다니는 것은 아닐까.
사사키 아타루는 <잘라라, 기도하는 그 인스타 팔로우 구매 손을>에서 정보와 명령에 순응하는 나쁜 읽기의 전형으로 하나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에 시달리는 ‘전문가’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힌 ‘비평가’에 대해 언급한다. 과거 아카데미에서의 공부가 전문가 환상에 빠져 있었다면, 지금 기술 기반 대중지성의 시대에는 너나없이 비평가 환상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공부하는 것은 삶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공부가 구원이 되는 이유는 읽기에 집중하는 동안 ‘딴짓’을 덜하게 되기 때문이라는 지론을 펴기도 했다. 그런데 코로나19 이후엔 나 역시 비대면으로 과잉 연결되었다고 느낀다. 유튜브와 팟캐스트 등을 하지 않아도 동물권, 장애인, 환경, 여성단체의 소식을 뉴스레터로 받아보고, SNS도 하고, ‘업계 동향’을 살피느라 인문학 플랫폼들의 정보도 주기적으로 열람하고, 종종 다른 인문학공동체의 비대면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기 때문이다.
대신 나는 내 공부의 화두가 희미해지고, 사색하는 시간이 줄었다고 느낀다. 나이 듦과 죽음을 공부하겠다고 공언했지만, 그것이 곧 닥칠 나의 실존적 죽음과 진지하게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공부의 소재를 바꾼 것은 아닌지 스스로 의심한다. 28개나 되는 프로그램을 백가쟁명으로 펼치느라 정신없이 바쁜 공동체 친구들에게도 우리 공부가 어디로 향하는지 알고 있냐고 묻고 싶다. 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느낀다. 각자도생의 시대에 더 많이 연결되어야 한다는 당위와 플랫폼 초연결 시대에 더 치열하게 고립과 은둔을 선택해야 한다는 직감 사이에서 방황한다. 정답이 없거나, 혹은 나만 모르거나. 아무튼 공부란 무엇인가라는 새삼스러운 질문이 다시 나에게 왔다. 지금도 여전히 앎이 우리 삶의 동아줄인지, 조만간 친구들과 인스타 팔로우 구매 이야기를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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