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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의 위대한 이웃]검은 개와 마지막 정류장

행복한 0 6 05.04 12:29
나는 멀리서 왔다. 누구나 멀리서 온다. 멀리서 와서, 잠시 잠깐 ‘착지’했다 멀리 떠난다. 아무도 서 있지 않는 텅 빈 정류장에 버스가 머무는 시간보다 잠시 잠깐이다. 그 잠시 잠깐 사이엔 무수한 ‘때’가 있다. 크게는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코헬렛 3장 2절). 태어날 때와 죽을 때 사이엔 눈금자의 눈금처럼 헤아릴 수 없는 때가 있다. 울 때와 웃을 때, 노래할 때와 노래하지 않을 때, 떠날 때와 머물 때…. 심을 때와 심긴 것을 뽑을 때 사이엔 때와 함께 우리가 아는 계절과 알지 못하는 계절이 있다.
이곳엔 오래된 정류장이 있다. 그리고 정류장만큼이나 오래된 슈퍼가 있다. 그 슈퍼에는 백발의 여인이 있다. 슈퍼에서는 정류장을 지나가는 몇개 안 되는 버스들의 버스표를 판다. 여인은 첫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기 전에 슈퍼 문을 열고, 마지막 버스가 지나가고 나서야 슈퍼 문을 닫는다. 밤이 꽤 깊어서야 정류장을 지나가는 마지막 버스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도 여인은 슈퍼 불을 환히 켜둔다. 담배나 라면, 술을 사려는 손님조차 없는 한겨울 밤에도 여인은 마지막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가고 나가서 슈퍼 문을 닫고 불을 끈다. 나는 그제야 슈퍼 한쪽에서, 아이스크림 냉장고가 내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들르며 검은 털로 뒤덮인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한다. 여인은 내게 물과 먹을 걸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그 여인의 개라고 말한다. 일흔이 넘은 자신의 생에(역사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여인은 나를 자신의 곁에 매어두려 하지 않는다. 나는 여인이 슈퍼 미닫이문 옆에 늘 놓아두는 물로 혀를 축이고 정류장으로 간다.
정류장에는 사람이 아무도 서 있지 않다. 아무도 내리지 않고, 아무도 타지 않은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간다. 버스에 실린 빈 의자들이 정류장을 지나간다. 강원 화천군 외진 마을에 덩그러니 있는 정류장은 마지막 정류장이다. 세상의 모든 정류장은 마지막 정류장이다. 버스를 타고 그곳까지 와서 내리는 사람도, 버스를 타기 위해 그곳까지 온 사람도, 그냥 그곳에 와서 서성이던 사람도 결국은 떠나는 곳이 정류장이기 때문이다.
초코파이 상자처럼 네모반듯하고 제법 긴 의자가 놓여 있는 정류장은 때때로 아주 작아 보인다. 모래알처럼 작아 보인다. 정류장은 어쩌면 모래알인지도 모른다. 세상의 모든 정류장을 모으면 광활한 사막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버스가 달려온다. 정류장에 정확히 선다. 모든 버스가 그런 것은 아니다. 정류장에 조금 못 미쳐 서는 버스도, 정류장을 지나쳐 서는 버스도 있다. 버스에서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버스에서 누군가 내렸다면 나는 꼬리를 흔들며 달려갔을 것이다. 누구든, 버스를 타고 이곳까지 와 정류장에 내린 그 누군가를 내 검은 온몸으로 반겨줬을 것이다.
늙고 왜소한 여자가 정류장으로 느릿느릿 걸어온다. 늙은 여자는 혼자다. 늙은 여자는 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지 못한다. 나는 늙은 여자를 알고 있다. 그녀는 슈퍼의 단골이다. 바라보는 것은 시작이다. 바라보는 것에서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움직인다. 내가 바라보는 것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
사람을 바라본다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다. 사람을 볼 때 나는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대개의 사람들은 사람을 바라볼 때 한없이 불행해 보이는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버스가 온다. 늙은 여자가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떠난다. 어스름이 내린다. 여인이 슈퍼의 불을 밝힌다. 나는 슈퍼로 가 여인이 내 밥그릇에 부어 놓은 밥을 먹고 티브이 소리를 듣다가 다시 밖으로 나온다.
‘참외와 오키나와 소년’ 우에즈 노리아키씨
그녀는 느리다, 아름답다, 임하은씨
‘그릇 빚는 남자’ 박현원 도공
조금 있으면 마지막 버스가 지나갈 것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달도, 별도 안 떠 하늘은 나만큼이나 검은 거대한 구멍 같다. 나는 저 구멍 속에 있을 셀 수 없이 많은 정류장들을 생각한다. 누군가 서 있는 정류장, 아무도 서 있지 않는 정류장, 하루 종일 버스가 한 대밖에 지나가지 않는 정류장, 버스가 10분 5분 간격으로 지나가는 정류장, 버스가 더는 지나가지 않는 잊힌 정류장….
마지막 버스가 달려온다. 누가 타고 있을까? 아무도 타고 있지 않을까? 그 누구는, 혹은 그 아무도는 당신일 수도 있다.
팔레스타인 1936오렌 케슬러 지음 | 정영은 옮김위즈덤하우스 | 528쪽 | 2만8000원
1936년 4월15일 영국령 팔레스타인 텔아비브에서 유대인 이스라엘 하잔이 아랍인들의 총격에 목숨을 잃는다. 비밀결사 ‘검은 손’을 설립한 이맘(지도자) 이즈 알 딘 알 카삼의 복수를 위한 기부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1936년부터 3년간 영국령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진 ‘아랍 대봉기’의 첫 번째 사망 사건이었다.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일어난 아랍 대봉기는 수천명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저널리스트이자 정치분석 전문가인 오렌 케슬러는 <팔레스타인 1936>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중동 분쟁’이 1936년 ‘아랍 대봉기’에서 시작됐다고 주장한다. 중동 분쟁의 원점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에 이어진 ‘나크바(대재앙)’라고 보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케슬러는 5년간의 취재로 아랍 대봉기 3년에서 중동 분쟁의 맹아를 발굴하려 시도한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팔레스타인 아랍인에게 대봉기는 처음으로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을 이룬 사건이었다. 영국 위임통치 당국이 시온주의 세력의 뒤를 봐주고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는 유대인이 늘어나자 아랍인들은 위협을 느꼈다. 하지만 대봉기가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전투력과 경제력을 상실했고, 대규모 난민이 발생했으며, 지도자들은 추방당했다. 10년 뒤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을 건국할 때 팔레스타인은 무력했다.
대봉기를 목도한 시온주의 유대인들은 주권국가를 세우기 위해서는 무력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유대인들은 당시 최고 군사 강국이었던 영국에 무기와 훈련을 지원받았다. 현재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인에게 시행하는 행정 구금(형사소송 절차 없이 구금을 무제한 연장하는 제도)은 대봉기 당시 영국 경찰에서 배운 것이다.
케슬러는 ‘서술식 역사서’를 썼다. 마치 소설처럼 목차 다음에 ‘등장인물’을 소개한다. 영국에서 유학한 엘리트이자 아랍민족주의 활동가인 무사 알라미, 나중에 이스라엘 초대 총리에 오르는 시온주의 지도자 다비드 벤구리온, 아랍 문화와 서양 문화 사이에서 갈등했던 지식인 조지 안토니우스 등은 모두 실존 인물이다. 이들을 주인공 삼아 역사적 장면들을 재구성해 현장감이 상당하다.
운명적 사랑의 상대부터 정치적 성향까지 유전자가 결정한다
작업복이 말해주는 노동의 현실
소비자, 기만적 상술에 농락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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