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home    〉   Q&A

‘눈물의 여왕’에 나온 그곳...알고 보니 사유의 숲이었네 ‘대구 사유원’

행복한 0 4 05.05 14:34
‘가정의달’엔 재충전이 절실하다. 노동절,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부부의날 등 휴일과 기념일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바깥나들이와 각종 이벤트에 피로가 쌓였다면, ‘치유’를 위한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한국의 웰니스 관광지를 키우겠다고 발표했다. 웰니스는 웰빙(Well-being)과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건강하고 안정된 상태’를 뜻한다.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취지다. 문체부는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최근 우수 웰니스 관광지 77선을 발표하면서 대구 사유원에서 현판식을 진행했다. 사유원을 대표적인 웰니스 관광지로 추천한 것이다. 사유원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tvN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재벌 일가가 사냥을 즐긴 촬영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달 24일 ‘생각하는 정원(思惟園)’이라는 뜻을 지닌 숲에서 사유의 걸음을 내디뎠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설계를 맡겼지만, 건축물은 자연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송은정 사유원 이사는 사유원의 디자인 철학을 이렇게 설명했다.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 알바로 시자를 비롯해 승효상, 최욱, 박창렬 등 내로라하는 거장들에게 사유원 설계를 맡겼지만, 주인공은 건축물이 아닌 ‘자연’이 되게 해달라 주문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작품을 자연 속에 숨기려 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사유원은 유재성 TC태창(태창철강) 회장이 설립한 것이다. 1989년 직원을 통해 300년 수령의 모과나무가 일본으로 밀반출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부산항으로 달려가 모과나무 네 그루에 무려 4배의 웃돈을 지불하고 출항을 저지시킨 게 시작이었다. 소문이 퍼지면서 일본으로 모과나무를 팔던 전국의 상인들이 유 회장에게 오기 시작했다. 그는 모과나무들의 보금자리를 찾다 2006년 군위군 팔공산 자락에 부지를 마련했다. 처음엔 일반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공사 기간 지루함을 달래려 국악 연주자들을 초청했고, 외부에서 온 손님들은 우리만 보기 아깝다고 입을 모았다. 유 회장은 사람들을 초대하려면 세계적인 작가 작품이 있어야겠다며 유명 건축·조경가를 섭외해 66만㎡ 땅에 30개의 작품과 9개의 정원을 마련했고, 2021년 사유원을 일반에 공개했다.
사유원의 명칭은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서 따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 대해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이라 소개한다.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물을 통해 인생을 사유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공간인 셈이다. 그래서 사유원의 건축물은 자연 속에 파묻힌 모양새다. 건물은 마치 침전하듯 콘크리트 속으로 이어지지만, 종착점에서 도리어 자연을 거대하게 펼쳐 보인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 속에 웅장한 자연의 깨달음이 다가오는 전개다. 미학보다는 철학을, 외형보다는 본질을 추구한 것이다.
사유원의 산책길은 목련길, 백일홍길, 모과길, 고송길 등 1~4시간 코스로 다채롭다. 하지만 이곳을 여러 번 찾은 사람조차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길은 걸을 때마다 새롭게 느껴졌다. 오가는 사람이 적은 길은 고요하고 한적해 숲속에 오롯이 혼자만 있는 느낌이 든다. 송 이사는 수목원으로 사용되는 10만평 땅에서 몇명이 있어야 혼자라고 느낄 수 있는지 전문가에게 의뢰했더니 300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며 현재 평일 300명, 주말 35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자연 속에 몸을 숨기고 내면에 집중한 건축 작품처럼 이곳을 찾으면 다른 사람이나 외적인 환경이 아닌 나 자신에 온전히 집중하게 된다.
사유원에서 길을 잃더라도 꼭 만나고 싶은 작품이 있었다. 바로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소요헌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Y자 모양인 소요헌은 원래 스페인 마드리드 오에스테공원에 피카소의 명작 전시를 위한 프로젝트로 시작됐다. 하지만 당시 그 프로젝트가 철회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자 유 회장이 직접 건축가를 찾아 나섰다. 스페인전쟁 당시 게르니카 폭격과 한국전쟁 당시 격전지인 군위의 유사성을 강조해 시자를 설득했고 결국 소요헌에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임신한 여인’을 상징하는 작품이 각각 설치될 수 있었다.
큰길은 점점 높아져 빛의 정점에 이르고, 작은 길은 낮아져 ‘생명의 알’에 이른다. 천장에서 빛이 내리쬐는 곳에 설치된 붉은 철제 작품은 게르니카 주택의 지붕을 뚫고 들어온 포탄을 형상화해 ‘무모한 폭력’을 상징하려 했다. 반대편 작은 길을 따라가면 거대한 알 모양의 작품 ‘생명의 알’이 회색빛 콘크리트 벽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생명과 죽음이 결국 순환한다는 메시지가 작품에 담긴 것이다.
소요헌을 설계한 시자는 반대로 유 회장에게 또 다른 작품을 제안했다. 사유원에서 유일하게 자연 밖으로 솟은 전망대 ‘소대’다. 유 회장은 건축물이 경관에서 도드라지는 점을 경계했지만 시자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15도 기울어진 높이 20m의 소대는 ‘새 둥지 전망대’라는 뜻을 지녔다. 산을 향해 안기는 듯한 모습으로 사유원 안팎을 조망한다. 소대 꼭대기에 오르면 저 멀리 소요헌과 반대편 창평저수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빈자의 미학’ 건축 철학으로 유명한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을 만나는 것도 사유원 산책의 즐거움이다. 사유원 꼭대기에 자리 잡은 명정은 ‘풍광은 이미 걸어오면서 보았으니, 내면을 더욱 들여다보라’는 뜻을 지녔다. 좁디좁은 계단과 사방이 막힌 통로는 하늘과 물만 있는 고요한 공간으로 안내한다.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현생과 내생이 교차하는 명상의 공간이다.
사유원에서 명상으로 비워낸 내면은 풍류로 채울 수 있다. 현암과 연못 옆 수변 무대 등에서다. 현암은 사유원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건축물이다.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인 현암은 밖에서 보면 지하로 내려가는 듯한 모양이지만, 건물로 들어서면 통창을 통해 팔공산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원래 외부에 개방되지 않다가 지난해 10월부터 티하우스로 관람객에게 개방했다. 따뜻한 차와 한식 디저트를 즐길 수 있다. 사전 예약을 하면 부산광역시 무형문화재 제8호 이수자인 최은희 가야금 연주자의 산조 공연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최씨는 자연 속에서 연주하는 저도, 듣는 관람객도 감상에 젖어 눈시울을 붉힐 때가 많다며 사유원에서는 연주를 하면서도 사유를 하고 에너지를 얻게 된다고 말했다. 오는 18일엔 사유원 연못 남명에서 국악제도 열린다.
건축, 조경, 예술이 버무려진 사유원 심장부에는 모과나무 정원이 있다. 108그루 모과나무가 천년을 이어가길 바라며 ‘풍설기천년(風雪幾千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가장 나이가 많은 654살 나무부터 평균 수령 524년의 모과나무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정원을 수놓는다. 반천년을 살아내고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과나무들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사유와 성찰 속에 생의 의지를 다지기를 바라는 듯 의연하게 숲을 지키고 있었다.
☞알고가세요
사유원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수목원’으로 불린다. 1인당 입장료가 5만원이다. 그럼에도 사유원은 하루 제한 인원 350명을 꽉 채운다. 사유원 홈페이지나 네이버에서 예약할 수 있다. 운영 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마지막 입장 가능 시간은 오후 3시다. 매주 월요일엔 휴원한다. 사유원은 팔공산 자락에 있어 대중교통 접근이 쉽지 않다. KTX 동대구역에 내리면 인근에 공유 차량을 이용할 수 있는 쏘카존이 11곳 있다. 네비게이션 주소는 ‘대구 군위군 부계면 치산효령로 1150’를 입력하면 된다. 동대구역에서 차로 50분가량 소요된다.
현존하는 괘불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고, 화면 속 등장인물이 가장 많은 ‘진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이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일반에 공개됐다. 보물로 지정된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괘불 중 가장 오래된 17세기 작품의 하나이기도 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은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진천 인스타 팔로워 늘리기 영수사 영산회 괘불탱’을 소개하는 ‘영산(靈山)의 모임-진천 영수사 괘불’ 전을 1일 불교회화실에서 개막, 10월 13일까지 선보인다고 1일 밝혔다.
괘불(괘불탱)은 야외에서 치러지는 대규모 불교의식에 사용된 불화를 말한다. 조선시대 임진왜란·병자호란이 끝난 뒤인 17세기 이후 불교의식이 활발하게 열리면서 본격적으로 조성됐다. 괘불은 여러 소재로 그려지지만 고대 인도 영취산에서 열린 석가모니 부처의 설법 장면인 영산회상이 가장 널리 채택됐다.
‘영수사 쾌불탱’은 1653년(효종 4) 제작됐다. 중앙박물관은 현전하는 괘불 117점 중 조성 시기가 이른 괘불이라며 괘불 화면 아래쪽에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하는데, 이는 18세기 이후 정형화된 괘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로 학술적, 불교사적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특히 이 괘불은 높이 919㎝, 너비 570.5㎝, 무게 76㎏에 이르는 대작이다. 화면 속에는 괘불들 가운데 가장 많은 140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수많은 인물 가운데 화면 중앙의 높은 연화대좌 위에 석가모니불이 앉은 모습으로 표현됐다. 또 석가모니불을 향해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하는 인물이 사리불존자인데, 보살이 아닌 승려 모습으로 불화에 등장하는 첫 번째 사례다. 석가모니불과 사리불존자의 주변으로는 부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여러 보살, 제자 등 다양한 인물들이 모여 있다. 그 아래로는 부처를 향해 절을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들이 있는데 다른 괘불에서는 보이지 않는 형상이다.
‘영수사 괘불탱’은 화면 가장 아래에 그림의 제작배경 등을 적어 놓은 화기(畵記)가 있다. 화기에는 괘불의 제작자 12명과 후원자 149명 등 161명의 이름, 불화 제작에 소요된 물품이 상세하게 적혀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한 자료다. 괘불 조성 당시 괘불을 직접 그린 화승은 명옥, 소읍, 현욱, 법능 등 4명이다. 후원자 이름 뒤에는 ‘양주(兩主)’ ‘양위(兩位)’가 쓰여 있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부부가 함께 괘불 조성의 후원자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윤성용 관장은 진천 영수사에 소장된 ‘영수사 괘불’은 1653년 당시 161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정성이 모여 완성됐다며 이번 전시는 최대 규모의 장엄한 괘불을 오롯이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밝혔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