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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볼까 말까’ 결정하는 90초의 승부···영화 트레일러의 세계

행복한 0 3 05.09 00:10
90초. 지하철 한 정거장만큼의 짧은 시간이지만, 누군가에겐 어떤 영화를 볼지 말지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이기도 하다. 영화·드라마 트레일러(예고편) 전문 제작사인 ‘미스터 쇼타임’의 대표, 김익진 감독(44)은 이 90초를 위해 지난 12년간 고군분투해왔다.
미스터 쇼타임은 2012년부터 <범죄도시 2> <카지노> <스즈메의 문단속> 등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 인스타 팔로우 구매 예고편을 제작했다. 수 시간의 영화를 수십 초로 줄이는 예고편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김 감독을 최근 서울 마포구 망원동에 있는 작업실에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90초는 극장에서 개봉하는 상업 영화 예고편의 일반적인 길이다. 90초라는 숫자에 큰 의미는 없다. 과거 예고편은 2분 30초 정도로 더 길었다. 그러다 멀티플렉스에서 영화 시작 전 광고를 틀어 수익을 내기 위해 예고편 방영 시간을 줄이면서 암묵적으로 예고편의 길이는 ‘긴 건 90초, 짧은 건 30초’로 규격화됐다. 수십 초 안에 영화 한 편을 소개하는 데는 기술이 필요하다. 예고편 길이가 점점 짧아지자 아이러니하게 기술이 늘었다. 한국이 예고편을 잘 만드는 편이에요. 점점 더 함축적으로 만들다보니 기술이 좋아졌어요.
미스터 쇼타임은 지금까지 260편 가량의 예고편을 만들었다. 한국 영화가 100편, 수입 영화가 160편 정도다. 외국 영화는 이미 예고편이 있어도 국내에 들여올 때 ‘한국 감성으로’ 다시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너의 이름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괴물> 예고편이 그렇게 다시 만들어졌다. 한국 감성은 ‘지루한 것을 못 참는’ 거죠. 한국 관객들은 기다려주지 않아요. ‘후킹’ 포인트도 전반적으로 넣고, 처음 5초 안에 이 영상을 계속 볼지 안 볼지가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만들어요.
주변에서는 ‘남들보다 영화 먼저 봐서 좋겠다’고 하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며 예고편을 만드는 경우는 별로 없다. 보통은 음악도, 자막도 없고 블루스크린이 그대로 남아있는 가편집본을 토대로 작업을 한다. 완성되지 않은 CG 장면은 머리로 상상해가며 만드는 경우도 많다.
그가 예고편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배경음악’이다. 단 30초 길이의 <범죄도시 2>의 론칭 예고편에는 그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예고편은 ‘캐논 변주곡’과 함께 시작된다. 실루엣만 등장하는 마동석과 검은 배경이 교차하면서 무언가 ‘퍽퍽’ 강타하는 소리, ‘살려주세요’ 라는 비명이 섞인다. 직접적으로 때리는 장면도, 맞는 장면도 나오지 않지만 캐논과 펀치 소리, 비명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예고편 공개 후 ‘캐논 변주곡이 이렇게 무섭게 들릴 줄이야’ 라는 댓글이 인스타 팔로우 구매 달렸다. 제가 작은 것에 집착하는 편이어서 사운드 작업자한테 캐논이랑 비명 소리의 피치(음높이)를 맞춰달라고 부탁했어요. 나중에 ‘비명 소리랑 캐논 화음 뭐냐’는 댓글 보고 엄청 기분 좋았죠.
잘 만든 예고편이란 어떤 것일까. 김 감독은 일단 끝까지 볼 수 있는 예고편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장면을 보고 ‘이 영화 재밌겠다’는 느낌을 주는 예고편이면 잘 만든 것이지 않을까요? 영화 개봉 후에 ‘예고편에 속았다’ 같은 댓글이 달리는 것은 사실 예고편 팀에겐 최고의 찬사예요.
국내에 있는 예고편 제작사의 정확한 수는 알 수 없다. 대체로 소규모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2020년 영화진흥위원회가 주최한 ‘코로나 19 극복 극장 활성화 사업’에 공모한 예고편 제작사는 19개였지만,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 감독은 제가 알고 있는 업체는 10여 곳 정도 된다고 했다. 그의 회사도 그를 포함해 3명이 꾸려가고 있다.
회사를 10년 넘게 운영하는 동안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코로나 19로 크게 꺾인 영화 산업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그 자리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가 차지하면서 요즘은 OTT 시리즈 예고편 제작이 늘었다. 디즈니플러스의 <삼식이 삼촌> 예고편도 그의 회사에서 한 작품이다.
그는 몇 년 전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1000만 영화 예고편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범죄도시 2> 예고편을 만들며 그 꿈을 이뤘다. 지금의 꿈은 영화 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영화가 잘 안되면 예고편을 잘 만들어도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작업했던 영화가 ‘대박’까지는 아니어도 유의미한 성적을 냈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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