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home    〉   Q&A

야쿠쇼 코지의 얼굴로 쓴 인생이라는 하이쿠 퍼펙트 데이즈

라이더 0 41 07.05 10:33
안녕하세요 조선일보 문화부 신정선 기자입니다.
그 영화 어때 76번째 레터는 영화 퍼펙트 데이즈입니다. 3일 수욜에 개봉했는데 개봉 당일 독립예술영화 차트 1위를 했네요. 4일 새벽에 영진위 통합전산망에 3일자 순위 업데이트 기다렸다가 확인하고 기분 좋게 잠들었습니다. 어떤 영화도 세상 모두가 좋아하거나 맘에 들어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런 영화를 한 분이라도 더 보시면 좋겠네요.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배우가 인생을 쌓아올려 빚어낸 울림과 여운이 오래 남으실 거에요. 저희 신문 1일 월욜자 기사로 쓴 야쿠쇼 코지입니다. 오늘 레터에서는 기사와 중복되지 않는 한에서 영화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릴게요. 제가 영화 보기 전 알고 있던 정보는 세 가지 영화 제목이 완벽한 날들이다 주연이 야쿠쇼 코지다 그가 이 영화로 작년에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였습니다. 여기까지 들으면 안 봐도 본 듯해집니다. 흠 야쿠쇼 코지가 전혀 완벽하지 않은 날들을 완벽한 연기로 보여주겠군. 예상은 절반만 맞았습니다. 야쿠쇼 코지가 연기한 주인공 히라야마의 완벽한 날들이 어떤 면에선 완벽했으니까요. 영화 도입부에 그가 출근하기까지의 모습이 보여지는데 그 몇 분의 장면이 그 자체로 이미 완성형이었습니다. 그냥 그 부분만 계속 2시간 동안 반복해서 보여줘도 영화가 되겠다 싶을 정도였어요. 아침에 눈 뜨고 세수하고 물 주고 옷 입는 누구나 똑같을 그 모습이 왜 그렇게 묘하게 마음의 안정을 주던지. 히라야마는 화장실 청소부라 이른 아침에 트럭을 몰고 출근하는데 출퇴근 트럭에서 음악을 들어요. 카세트 테이프로요. 처음 나왔던 음악은 애니멀즈의 하우스 오브 더 라이징 선. 이외에도 영화 제목이 된 루 리드의 퍼펙트 데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페일 블루 아이즈 같은 60~80년대 노래가 많이 나오는데요 선곡은 감독 빔 벤더스가 했다고 하네요.
히라야마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표정도 별로 없고요. 어쩐지 사연 있어보이는 남자입니다. 뭔가 이유가 있어서 이 일을 하고 있을 거 같은데 영화에서 알려주진 않습니다. 영화 중간에 등장 인물이 몇 명 나오는데 그들을 통해 어렴풋이 짐작가는 부분이 있긴 해요. 원래부터 청소일을 하던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모종의 계기로 지금의 일상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청소일도 반복된 일상도 가진 것 없는 주변도 그 선택의 결과인거죠. 어느 날 이렇게 살아가겠다고 결정하고 결연히 이어온 듯 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그의 일상은 완벽한 거죠. 더 이상 바랄 것도 없고 요구할 필요도 없고 하루 일을 완수하면 고요하게 마침표가 찍히는 일상. 어쩌면 히라야마는 가진 게 없는 게 아니라 이미 완성된 사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쿠쇼 코지의 연기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네요. 엔딩 부분에 그의 얼굴만 롱테이크로 보여주는데요 사실 이런 선택을 한 감독은 많았습니다. 야쿠쇼만큼 길게는 아니지만 듄2′의 엔딩도 젠데이아의 얼굴을 보여주며 끝나죠. 젠데이아도 잘 했어요. 사랑하는 남자의 어쩔 수 없는 선택 그에 따른 그녀의 선택 그 사이에서 배어나오는 슬픔과 의지가 잘 드러났죠. 그런 면에서 듄2′의 엔딩도 전 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맘에 들고 아니고의 차원이 아니고 영화 안에 그의 얼굴로만 만들어낸 또 다른 영화가 들어있는 듯 홀로 우뚝 완성된 한 편의 하이쿠 같더군요. 아 저 얼굴에 다 들어있구나 더 이상 말이 필요없구나 싶어지는. 이때 나오는 음악이 제가 바로 직전 레터 콰이어트 플레이스 첫째날 엔딩에 나왔다고 말씀드린 니나 시몬의 필링 굿 입니다.
정말 우연의 일치로 같은 곡이 같은 부분 에 나왔네요. 둘 다 참 절묘하게 어울리고요. 고사리 먹으면 좋은점 그리고 다양한 활용법 영화 끝나고 크레딧 다 올라가고 나서 영상 하나 더 나옵니다. 놓치지 마세요. 마블 쿠키 영상처럼 다음 영화를 미리 알려주는 건 아니고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을 슬쩍 남겨뒀더군요. 코모레비라고 나뭇잎 사이로 빛이 잔잔하게 일렁이는 모습이라는 뜻이라고 하네요. 히라야마가 틈날 때 올려다보던 하늘 바라보던 나무 사이로 비춰지던 잔영이 코모레비라고 합니다. 그가 사진기로 열심히 찍던 모습들이기도 하고요. 그렇게 마음에 남고 기억에 잡아두려한 순간들이 모여서 인생이 되고 삶으로 모인다 그러니 어느 것 하나 특별하지 않은 순간은 없습니다. 아마 감독은 그런 말을 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영화관에서 보신다면 끝까지 자리에 남아 그 장면까지 챙겨 담아가시면 좋겠습니다. 아래에 저희 신문 1일 월욜자에 실린 야쿠쇼 코지 기사를 링크 아니고 본문으로 붙이겠습니다. 원고지 10장 넘어서 좀 긴데 영화 내용이 들어있어서 읽어보시면 더 이해가 쉬우실 거에요. 그럼 저는 다음 레터에서 뵙겠습니다. 스무 살 청년 하시모토 고지는 도쿄 지요다구 구청 토목과 직원이었습니다. 고향 나가사키를 떠나 익숙해지지 않는 직장 생활에 지쳐가던 그는 우연히 얻은 티켓으로 막심 고리키의 연극 밑바닥을 봤다. 연기란 이런 것이구나. 저런 눈빛으로 하는구나.
연극에 빠져든 그는 과감하게 연기 학원에 지원했습니다. 경쟁률 200대1. 결과는 뜻밖에도 합격이었습니다. 구청 에서 일했고 앞으로 역할 이 넓어지라는 뜻에서 예명으로 야쿠쇼를 얻었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명배우 야쿠쇼 고지 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 로 지난해 제76회 칸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은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퍼펙트 데이즈 를 보고 기뻐하는 팬들을 만나면서 얼마 남지 않은 배우 인생을 이어 나갈 용기를 얻었다며 영화 강국인 한국 팬들은 어떻게 봐주실지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습니다. 1979년 스크린에 데뷔한 그는 일본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배우 감독이 바랄 수 있는 최고의 배우 라는 칭송을 받는다. 정작 그는 자신의 연기에 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작품을 할 때면 언젠가는 좀 더 잘할 수 있겠지 다음엔 연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라는 생각으로 임합니다. 지난해 칸 영화제 수상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2004년 14세로 칸 남우주연상을 받은 야기라 유야 를 언급하며 이제야 겨우 야기라 유야군을 따라잡았다 이 상에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며 자신을 낮췄다. 긴 세월 배우로서 버리지 않는 원칙은 하나. 인간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으려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흥미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인 화장실 청소부로도 이어졌습니다. 그는 배역을 맡고 청소부에게 실전 청소법을 배웠습니다. 영화에서는 돋보기로 변기 뒷부분까지 들여다보며 화장실 구석구석을 유리알처럼 닦아낸다. 그가 어찌나 철저하게 했던지 그를 가르친 청소부가 내일부터 출근해 주실 수 없겠느냐고 농담처럼 물어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는 화장실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배설하는 곳이지 않으냐며 그런 곳을 깨끗하게 하려는 마음과 노동이 매우 아름다운 행위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했습니다. 영화 제목은 완벽한 날들이나 주인공의 하루는 지극히 평범합니다.
새벽 거리 싸리비 쓰는 소리에 잠이 깨고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하고 면도를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작업복을 입고 자판기 캔 커피를 사들고 트럭을 몰고 출근합니다. 퇴근 후엔 문고판 책을 읽다 잠든다. 그런 일상의 끝 모를 반복입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전혀 평범하지 않은 것은 야쿠쇼 고지의 손짓과 태도에 담긴 품위 때문입니다. 화장실 청소라는 자칫 비루하게 여겨질 작업마저 세상 마지막 의식인 듯 충실하게 행합니다. 그 안에 담긴 경건한 리듬이 관객을 몰입하게 합니다. 데뷔 이후 40여 년간 거의 매년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그 흔한 스캔들 한 번 없었던 그의 연기 인생이 그대로 투영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배우로 사는 한 완벽한 날은 있을 수 없다며 은퇴할 때까지는 버둥버둥 몸부림치는 삶을 살아갈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압도적인 경의야말로 야쿠쇼의 연기를 형성해온 바탕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는 본지 인터뷰에서도 배우가 자기 실력만으로 화면에 멋지게 표현된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라며 같이 일하는 영화의 장인들이 부려주는 마법의 도움을 받았다는 점을 망각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완벽과 거리가 먼 배우로 묘사하지만 그가 연기하는 퍼펙트 데이즈에 완벽한 장면은 있습니다. 출근하는 그의 얼굴만 길게 비추는 마지막 4분의 엔딩입니다. 재즈 가수 니나 시몬의 필링 굿 을 들으며 울 듯 웃으며 웃을 듯 우는 듯한 그의 표정은 어떤 스펙터클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일상의 고귀한 희로애락을 전합니다. 그는 사람은 슬플 때 울기만 하는 게 아니고 기쁠 때 웃기만 하는 게 아니지 않으냐며 모든 감정이 스며든 듯 느끼는 대로 표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좋아하는 한국 영화로 살인의 추억 배우로 안성기와 송강호를 꼽았습니다. 살인의 추억의 봉준호 감독은 한 대담에서 야쿠쇼 고지를 캐스팅해본 감독이 부럽다며 꼭 그를 캐스팅해서 거장 밑에서 갖은 고생을 하며 학대당하는 나이 많은 문하생 역을 시켜보고 싶다 고 말했습니다. 야쿠쇼 고지에게 봉 감독이 그런 역할을 제안하면 해볼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 명쾌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기사를 봤습니다. 그 이후로 줄곧 제안을 기다리고 있어요.
봉 감독께 제가 연락 기다리고 있다고 꼭 전해주세요. 그 영화 어때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subscriptions/27574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