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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 10대 팬들 70대 됐지만난 영원한 오빠

라이더 0 1 08.30 01:01
김용택 시인앞산에서 꾀꼬리 한 마리가 울고 있습니다.
저 울음소리는 무엇인가 정겨운 갈망이 느껴집니다. 마을 뒷산에서도 꾀꼬리 한 마리가 앞산 꾀꼬리와 같은 소리로 운다. 울음을 주고받다가 앞산 꾀꼬리가 내 머리 위를 지나 뒷산으로 노랗게 날아간다. 뒷산에서 울던 꾀꼬리가 밤나무 숲에서 나오더니 둘이 만나 이장네 집 지붕을 넘어 남산으로 날아간다. 새들은 표정이 없습니다. 몸짓이나 소리로 뜻을 전합니다. 강 건너 밭으로 갔습니다. 고추밭 사이로 걸어갔습니다. 밭 끝에는 아내가 재작년에 심어놓은 어린 단감나무가 있습니다. 아내가 감나무가 죽었는지 잘 사는지 궁금해할 때마다 가보겠다 가보겠다 해놓고 또 잊어버리며 한 봄 한 여름이 다 갔습니다. 휴대폰 성지 어린 감나무 두 그루 제법 의젓합니다. 길어 나간 새 가지에 감을 몇 개씩 달고 있습니다.
잎이 두껍고 윤기가 난다. 지난해 겨울의 추위로 감나무들이 많이 죽었는데 어린 감나무 감 얼굴이 볼수록 야무지다. 곧 붉어질 것입니다. 자연의 얼굴은 무궁합니다. 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고 신문을 9개 정도를 클릭해서 본다. 사설 칼럼 기획 기사 건축 그림 전시 기사 AI 기사 연예 영화 축구 명장면 인구문제 지역소식 정치평론가들의 글이나 정치인들의 인터뷰 기사들을 챙겨 읽는다. 좋은 글은 복사해 따로 저장해둔다. 내가 제일 관심이 있게 보는 것은 정치인의 말입니다. 정치인의 언어 동원능력과 선택한 그 언어 개념의 범위 어휘 사용 기술은 그 사람의 정치적인 역량과 능력 인간성을 가늠하는 잣대다. 그 사람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시대를 읽는 정치 철학과 신념이 어디까지인지 짐작하게 합니다. 정치인들이 입고 있는 옷 머리 모양 안경 얼굴 표정 걷고 서 있는 자세 눈빛 손짓은 그 사람의 정치력 확장 가능성을 믿게 해준다. 이제 일기를 쓰고 내가 써놓은 시를 검토할 차례다. 일기를 쓰려고 화면을 펼치다가 우연히 이런 밑도 끝도 없는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페리클레스 ~BC 429년 라는 그리스 정치가가 기원전 413년에 전몰자들을 추도하는 장례식 연설문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의 정치체제는 이웃나라의 관행과 전혀 다릅니다. 남의 것을 본뜬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남들이 우리의 체제를 본뜹니다. 몇몇 사람이 통치의 책임을 맡는 게 아니라 모두 골고루 나누어 맡으므로 이를 데모크라티아 라고 부릅니다. 개인끼리 다툼이 있으면 모두에게 평등하게 법으로 해결하며 출신을 따지지 않고 오직 능력에 따라 공직자를 선출합니다. 이 나라에 뭔가 기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서 인생을 헛되이 살고 끝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는 전 헬라스 의 모범입니다. 마치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님이 우리 소원을 말하는 것처럼 온화한 표정과 말투가 느껴집니다. 자기 진영에 갇힌 철 지난 낡은 말이나 아는 것 없어 보이는 거친 언사로 남의 흠이나 헐뜯는 거친 말이 아닌 시대를 정리한 시대의 말 품격 있는 정치적인 정치인의 말을 우린 기다립니다. 우리 인류가 가장 잘 선택한 말 중에 민주주의라는 말과 정치라는 말을 대체할 말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자연 선택이 아닌 인간의 선택인 정치인들의 정치적인 표정은 그 시대를 사는 공동체의 표정을 결정짓는다. 이런 광경은 내 평생 처음이요. 당혹스럽고 익숙하지 않은데 일단 해봅시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슈퍼스타 남진 은 수십명의 기자들과 진행하는 라운드 인터뷰가 낯선 듯 했습니다. 그가 29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건 다음 달 4일 개봉하는 데뷔 60주년 다큐멘터리 오빠 남진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다큐는 1965년 서울 플레이보이로 데뷔해 21세기에도 둥지라는 히트곡을 낸 영원한 오빠 남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참전 70년대 퇴폐 풍조 추방 운동 80년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등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하는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남진은 20년 전 내 모습이 풋사과처럼 귀엽더라. 60년 가수 인생은 정말 행운이고 축복이고 이런 것이 가능했던 건 팬들 덕분이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남진은 1945년 목포의 부잣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친은 성공한 사업가이자 언론사 대표 국회의원 등을 지낸 고 김문옥 씨다. 다큐에서 그는 50세 나이 차의 아버지는 연예인이라곤 잘 모르셨다. 많고 많은 직업 중에 왜 풍각쟁이가 되려고 하느냐면서 싫어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남진은 음악이 좋아 가수가 됐습니다. 이날 인터뷰에선 학창 시절 때부터 들었던 레이 찰스 프랭크 시나트라 음악을 지금도 좋아한다며 솔직히 트로트는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내 첫 히트곡이 1966년 낸 트로트 장르의 울려고 내가 왔나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가진 재능에 비해 운이 좋았다고 했습니다. 전성기 시절 남진은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라고 불렸습니다. TBC 쇼쇼쇼의 연출자 황정태 PD를 비롯한 주변의 평가에 따르면 그는 팝의 리듬을 잘 이해하고 자신만의 감성으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히트곡으론 님과 함께 마음이 고와야지 둥지 등이 있습니다. 남진은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인기에 비해 노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진가를 보여주고 싶어서 요즘도 노력한다며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대한민국 1호 팬클럽이 생겨났던 그 시절 10대 소녀들이 지금은 70대가 됐습니다. 세월은 흘렀지만 팬들의 표정은 여전히 소녀 같습니다. 그런 소녀 앞에선 저도 오빠가 되는 거죠. 노래할 수 있을 때까지 무대에 오를 겁니다. 90대에도 노래한 토니 베넷 같은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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