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A

home    〉   Q&A

장애인올림픽 패럴림픽은 장애 극복 무대가 아니다

라이더 0 5 08.30 23:33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30일 페이스북을 통해 우리는 지금 국민의 생명권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면서 자신을 향해 제기되고 있는 갈등 프레임 에 반발했습니다.
한 대표는 갈등 프레임은 본질을 가리려는 시도라며 이같이 지적하면서 여의도식 갈등 프레임 유포와 저를 향한 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본질을 피해가지 말라고 질타했습니다. 이어 지금 국민의 생명과 건강이 위험에 처해있는지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지라는 본질에 대해 정면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주장을 거듭 강조하면서 글을 마쳤습니다. 지난 29일 윤 대통령은 국정 브리핑에 이은 회견에서 의료 공백 관련 질문에 비상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정부도 열심히 뛰고 있지만 현장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뛰고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대표는 29일 당 연찬회 폐회식 후 기자들과 만나 의료 개혁이 필요하고 의사 증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국민 건강과 생명은 절대적 가치이기 때문에 더 돌다리 두드려가면서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말씀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제안과 관련해 더 좋은 대안이 있으면 좋겠다. 제 대안만이 유일한 정답이란 말씀을 드리는 건 아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한 대표의 이런 발언은 자신이 의정 갈등 해소를 위해 내놓은 중재안 을 일부에서 당정 갈등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한 대표의 2026년 의대 증원 유예안 을 거절하면서 친윤석열계 의원들은 한 대표와 윤석열 대통령의 소통 부재를 문제 삼고 나섰습니다. 한 대표와 정부 사이의 갈등을 한정갈등 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이같은 표현에 대해 한 대표는 그 일각이 대통령실 일부인 것 같은데 그렇게 익명으로 말하는 것 자체가 상황을 그렇게 좋게 만드는 것 같진 않다라며 내가 당 대표다. 그렇지 않으냐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당 연찬회에 불참하고 이날 당 지도부와의 만찬을 연기한 것과 관련해 당정 간 감정싸움이 아니냐 는 지적에 나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추가로 만날 계획이 있느냐 는 질문에 따로 들은 바 없다고 답했습니다. 한 대표는 권성동 의원이 자신을 겨냥해 말 한마디로 툭툭 던진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고 언급한 것에 대해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특히 민심이 다른 내용들이 많을 경우에는 그걸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집권 여당 대표의 임무라며 그러라고 63 가 저를 지지해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패럴림픽 기간 언론 기사에는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기사를 읽고 나면 많은 이들이 감동을 받았다고 하지만 화가 났다고 항의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실제로 대한장애인체육회는 파리 패럴림픽을 앞두고 펴낸 미디어북을 통해 장애를 극복했다란 표현을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언론사에 권고했습니다.
쓰지 않으면 좋겠다는 표현이 있을 때는 써주면 좋겠다는 표현도 있게 마련. 장애인체육회 미디어북에는 장애를 얻다라고 써주면 좋겠다고 권고하는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좋은 것이 생겼을 때 얻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런 점에서 장애를 얻다란 표현을 추천하는 게 이상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비장애인 가운데는 통신 장애라고 할 때처럼 장애를 어딘가가 고장 난 상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입니다. 그래서 장애인이 어떤 일에 성공을 거뒀을 때는 장애를 이겨내고 그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장애가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반면 장애인들은 장애는 개인이 세상을 살면서 얻게 된 한 특성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인종이나 성별이 서로 다른 것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을 뿐이라는 얘기다.
그러니 장애를 극복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인종 또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들었을 때처럼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한 장애인 국가대표 선수는 다 커도 142cm인 비장애인 체조 선수 기사에는 이 선수 키가 남들보다 작은 이유가 뭔지 설명하는 내용이 별로 없습니다. 장신 농구 선수 기사에도 뭘 먹고 키가 그렇게 컸는지 맨날 쓰지는 않는다. 그런데 장애인 선수 기사에는 장애를 얻게 된 과정을 매번 꼭 써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휠체어 사용자인 이 선수는 계속해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렇게 손에 돈을 쥐여 주고 가신다. 한 선배가 100만 원은 받아 봐야 휠체어 세계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고 하더라라면서 선한 마음이라는 건 안다. 그런데 국가대표 선수인 내가 왜 동정을 받아야 하나란 생각은 지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비슷한 이유로 패럴림픽 기사는 위인전이나 신파극으로 변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패럴림픽 기사는 보다 극적으로 보다 영웅적으로 써야 한다는 규칙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야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을 안긴 스토리를 완성할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장애인 스포츠에 감동을 빼면 뭐가 남느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선생님께서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분야가 무엇이냐고 되묻고 싶다. 김포 북변 우미린 비장애인 대부분이 평범한 이웃인 것처럼 장애인도 대부분 그저 평범한 이웃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장애인 선수가 비장애인에게 감동을 주고 싶어서 노력하는 것도 아닙니다. 비장애인 선수가 그런 것처럼 스포츠를 통해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끼고 싶어 땀 흘리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까지 올라선 것입니다. 장애는 극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그 시선이 극복의 대상입니다.

Comments